이탈리아 요리

이름처럼 새하얀 시칠리아 디저트, 비앙꼬만자레(Biancomangiare)

corita40019 2026. 7. 27. 18:33

시칠리아의 화려한 돌체들을 계속 소개하다 보면, 장식과 색을 거의 사용하지 않은 새하얀 디저트 하나가 오히려 눈에 들어온다. 우유나 아몬드밀크에 설탕과 전분을 넣어 부드럽게 굳힌 **비앙꼬만자레(Biancomangiare)**다.

 

‘비앙꼬(bianco)’는 흰색, ‘만자레(mangiare)’는 먹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름을 그대로 풀이하면 ‘흰 음식’ 또는 ‘하얀 것을 먹다’라는 의미다. 이름처럼 재료와 완성된 모습 모두 흰색을 중심으로 한다.

 

겉모습만 보면 판나꼬따와 비슷해 보이지만 만드는 방법과 식감은 다르다. 판나꼬따는 생크림과 젤라틴으로 굳히지만, 비앙꼬만자레는 우유나 아몬드밀크에 옥수수전분을 넣어 농도를 낸다. 그래서 판나꼬따처럼 탱글탱글하기보다는 부드럽고 매끄러우며, 푸딩과 크림의 중간에 가까운 식감을 지닌다.

 

오늘날에는 달콤한 디저트로 알려져 있지만, 비앙꼬만자레의 역사는 중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유럽 여러 지역에서 ‘흰 음식’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요리에는 우유와 아몬드, 쌀가루뿐 아니라 닭고기나 생선이 들어가기도 했다. 흰색을 귀하고 세련된 색으로 여겼기 때문에 귀족과 왕실의 식탁에 오르는 고급 음식이었다.

 

시칠리아의 중세 비앙꼬만자레에도 닭가슴살을 잘게 찢어 우유와 쌀가루, 아몬드에 섞은 형태가 존재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고기와 생선이 빠지고 설탕이 더해져 지금처럼 부드러운 디저트로 변화했다. 이는 오랜 세월에 걸쳐 짭짤한 요리가 달콤한 후식으로 변한 흥미로운 사례다. 시칠리아 미식문화 자료

 

시칠리아에서는 우유로 만드는 방식과 아몬드밀크로 만드는 방식이 모두 전해진다. 특히 시라쿠사 일대에서는 아몬드로 만든 비앙꼬만자레가 유명하다. 따뜻한 기후에서 자란 향 좋은 아몬드를 갈아 만든 우유가 이 단순한 디저트에 시칠리아다운 고소함을 더한다.

 

기본 재료는 매우 소박하다. 우유 또는 아몬드밀크에 설탕과 옥수수전분을 넣고, 레몬 껍질이나 바닐라로 향을 더한다. 약한 불에서 계속 저으며 끓이면 부드럽고 걸쭉한 크림이 되며, 이를 작은 틀에 담아 차갑게 굳힌다. 이탈리아요리학회에 소개된 시칠리아식 비앙꼬만자레도 우유와 전분, 설탕, 레몬 껍질로 만드는 단순한 구성을 보여준다. 이탈리아요리학회

 

완성된 비앙꼬만자레 위에는 계핏가루와 다진 피스타치오, 아몬드를 뿌리거나 초콜릿 조각을 올린다. 자스민이나 레몬 향을 더하기도 하며, 딸기나 베리류 소스를 곁들이면 흰 푸딩과 붉은 과일의 색 대비가 아름답다.

 

비앙꼬만자레는 칸놀리나 까싸타처럼 강렬하게 달거나 화려하지 않다. 입안에서 천천히 풀어지는 부드러운 질감과 은은한 우유 또는 아몬드 향을 즐기는 디저트다. 풍성한 시칠리아 음식을 먹은 뒤 부담 없이 마무리하기에도 잘 어울린다.

 

오랜 세월 동안 귀족의 육류 요리에서 소박한 우유 푸딩으로 모습을 바꾸었지만, 이름과 새하얀 색만은 그대로 남았다. 비앙꼬만자레는 화려함 뒤에 가려진 시칠리아 디저트의 섬세하고 고요한 매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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