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는 질긴 소고기 부위를 오랫동안 천천히 익혀 부드럽게 만드는 요리가 지역마다 하나씩은 있다. 우리나라의 장조림처럼 시간을 들여 고기를 익혀 깊은 맛을 끌어내는 방식이다.
북부에서는 와인을 넣어 만드는 브라자토(Brasato)나 스페차티노(Spezzatino)가 대표적이라면, 중부 토스카나에는 뻬뽀조 알 임프루네티나가 있다.
뻬뽀조(Peposo)는 이름 그대로 '후추(Pepe)가 많이 들어간 요리'라는 뜻이다. 피렌체 남쪽 임프루네타(Impruneta) 마을에서 시작된 음식으로 알려져 있으며, 르네상스 시대 성당 건축에 사용하던 테라코타 벽돌을 굽던 장인들이 가마의 남은 열을 이용해 소고기를 와인과 통후추, 마늘만 넣고 오랫동안 익혀 먹었다는 이야기가 가장 유명하다. 오래 끓일수록 질긴 고기는 놀라울 만큼 부드러워지고, 통후추의 알싸한 향은 와인과 어우러져 깊은 풍미를 만들어 낸다.
나 역시 집에서는 스페차티노를 자주 만드는 편이다. 내가 살고 있는 에밀리아로마냐 지방은 버터와 크림을 많이 사용하는 북부 요리의 영향을 받아, 마지막에 크림을 넣어 부드럽게 마무리하는 방식을 좋아한다. 통후추를 넉넉히 넣으면 색다른 풍미도 더해진다.
반면 토스카나를 비롯한 중부와 남부 이탈리아에서는 버터나 크림보다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이 기본이 되고, 토마토를 활용하는 요리도 훨씬 많다. 마늘 역시 북부에서는 비교적 절제해서 사용하는 반면, 중부와 남부에서는 거의 모든 음식에 빠지지 않는 중요한 향신료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이탈리아 음식이 입맛에 잘 맞는다고 말할 때는 의외로 중부나 남부 요리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올리브오일과 토마토, 마늘의 조합은 한국인의 입맛에도 부담이 적고 친숙한 감칠맛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뻬뽀조 알 임프루네티나는 화려한 재료 없이도 좋은 고기와 와인, 통후추만으로 깊은 맛을 만들어 낸다. 시간이 최고의 양념이라는 말을 가장 잘 보여주는 토스카나의 대표적인 슬로우푸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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