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몬테의 전채요리를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음식이 **페페로니 콘 바냐 카우다(Peperoni con bagna càuda)**다. 구워서 부드러워진 파프리카에 마늘과 앤초비로 만든 따뜻한 바냐 카우다 소스를 곁들인 음식이다.
먼저 이탈리아어의 **페페로니(peperoni)**는 영어권에서 흔히 말하는 매콤한 소시지 ‘페퍼로니’가 아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우리가 파프리카 또는 피망이라고 부르는 채소를 가리킨다. 따라서 페페로니 콘 바냐 카우다는 소시지 요리가 아니라 파프리카를 이용한 피에몬테식 전채요리다.
바냐 카우다는 피에몬테 방언으로 ‘따뜻한 소스’ 또는 ‘뜨거운 목욕’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소금에 절인 앤초비와 마늘을 올리브오일에 천천히 익혀 만드는 소스로, 원래는 여러 사람이 따뜻한 소스 주변에 둘러앉아 생채소와 익힌 채소를 찍어 먹는 공동체 음식이었다.
피에몬테는 바다와 접하지 않았지만, 옛 소금길을 통해 리구리아 해안에서 소금과 염장 앤초비가 들어왔다. 오래 보관할 수 있었던 앤초비는 산간과 농촌 지역의 중요한 식재료가 되었고, 바냐 카우다를 비롯한 여러 피에몬테 전통음식에 자리 잡았다.
바냐 카우다에는 카르도, 양배추, 라디키오, 리크, 토피남부르, 감자 등 다양한 채소를 곁들이는데, 그중에서도 파프리카는 가장 클래식한 조합 가운데 하나다. 피에몬테주 공식 농식품 자료에서도 구운 파프리카를 바냐 카우다와 함께 먹는 전통적인 채소로 소개한다. 피에몬테주 바냐 카우다 자료
특히 토리노 남쪽의 카르마뇰라 지역은 품질 좋은 파프리카로 유명하다. **페페로네 디 카르마뇰라(Peperone di Carmagnola)**는 과육이 두껍고 단맛이 좋아 바냐 카우다와 훌륭하게 어울리는 지역 특산물이다. 피에몬테주 카르마뇰라 파프리카 소개
페페로니 콘 바냐 카우다는 파프리카를 오븐이나 직화에 구워 껍질을 벗긴 뒤 넓게 잘라 접시에 담고, 그 위에 바냐 카우다를 끼얹어 만든다. 파프리카는 구우면 수분이 빠지면서 단맛이 더욱 진해지고 식감도 부드러워진다. 여기에 짭조름한 앤초비와 알싸한 마늘, 올리브오일의 풍미가 더해지면 단맛과 짠맛이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집에 따라 파프리카에 바냐 카우다 소스를 끼얹어 바로 내기도 하고, 소스를 올린 채 오븐에서 잠시 더 익히기도 한다. 따뜻하게 먹어도 좋지만 실온에 가깝게 식혀 먹어도 맛있어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전채요리로도 알맞다.
바냐 카우다만 따로 맛보면 앤초비와 마늘의 향이 상당히 강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달고 촉촉한 구운 파프리카와 만나면 맛이 훨씬 부드러워진다. 접시에 남은 향긋한 올리브오일까지 빵으로 닦아 먹고 싶어지는, 재료는 단순하지만 피에몬테다운 강렬한 매력을 지닌 음식이다.

'이탈리아 요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링구아 알 바녯 베르드, 부드러운 소혀와 피에몬테식 초록 소스 (0) | 2026.07.16 |
|---|---|
| 토미니 엘레트리치, 입안에 짜릿한 전기를 일으키는 피에몬테 치즈 (0) | 2026.07.16 |
| 바다 없는 피에몬테의 멸치 전채요리, 아츄게 알 베르데 (0) | 2026.07.16 |
| 피에몬테 알바의 생소고기 요리, 까르네 크루다 알랄베제 (0) | 2026.07.16 |
| 피에몬테 음식 여행의 시작, 따뜻한 소스 바냐 카우다 (0) | 2026.07.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