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몬테의 프리미를 소개하면서 타야린과 감자 뇨키, 쌀로 만든 여러 리조토를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파스타도 리소토도 아닌 독특한 음식인 **라바톤 알레싼드리니(Rabatòn alessandrini)**를 소개한다.
라바톤은 피에몬테 남동부 알레산드리아도, 그중에서도 **리따 빠로디(Litta Parodi)**와 프라스케타 평야를 대표하는 전통음식이다. 리코따와 근대 같은 푸른 잎채소, 달걀, 그라나 치즈, 빵가루를 섞어 길쭉하게 빚은 뒤 육수에 삶아 만든다.
모양은 감자 뇨키보다 훨씬 크고 길며 작은 시가나 통통한 원기둥처럼 생겼다. 반죽에 밀가루가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토스카나의 **뉴디(Gnudi)**나 롬바르디아의 **말파띠(Malfatti)**와 비슷하다. 라비올리의 속재료가 파스타 반죽 밖으로 나온 음식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라바톤’이라는 이름은 ‘굴리다’ 또는 ‘데굴데굴 굴러가다’라는 뜻의 지역 방언 *라바타레(Rabatare)*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부드러운 반죽을 조금씩 떼어 밀가루를 뿌린 작업대 위에서 손으로 굴려 길쭉하게 만들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알레산드리아시의 라바톤 공식 자료
라바톤의 탄생에는 프라스케타 평야를 오가던 목동들의 이동이 깊이 관련되어 있다. 과거 목동들은 평야에서 겨울을 보낸 뒤 봄이 되면 가축을 이끌고 다시 산악 목초지로 올라갔다. 이 과정에서 리따 빠로디의 집들을 지나며 양젖으로 만든 리코따인 **시라스(U sirass)**를 판매했다고 한다.
마침 봄은 겨울 동안 쉬었던 닭들이 다시 알을 낳기 시작하고, 밭과 들에서 근대와 쐐기풀을 비롯한 어린 풀이 돋아나는 시기였다. 주민들은 목동에게 구한 리코따에 제철 들풀과 달걀, 남은 빵을 갈아 만든 빵가루를 섞어 라바톤을 만들었다.
리코따가 없을 때는 **마스케르파(Mascherpa)**라는 치즈를 사용하기도 했다. 끓인 우유에 응유제 대신 식초를 넣어 굳힌 소박한 치즈였다. 주변에서 자란 들풀과 그때 구할 수 있었던 치즈, 묵은 빵을 이용했으므로 라바톤은 전형적인 농가의 생활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채집한 들풀 대신 주로 근대나 시금치를 사용하고, 양젖 리코따 대신 쉽게 구할 수 있는 우유 리코따를 넣는다. 여기에 달걀과 그라나 치즈, 빵가루를 섞어 부드럽지만 모양을 잡을 수 있을 정도의 반죽을 만든다.
좋은 라바톤을 만들기 위해서는 근대와 리코따의 수분을 충분히 제거해야 한다. 재료에 물기가 많으면 반죽이 퍼지거나 삶는 동안 풀어질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빵가루를 지나치게 넣으면 완성된 라바톤이 단단하고 퍽퍽해진다. 빵가루는 반죽을 단단하게 만드는 주재료가 아니라 남은 수분을 조절하는 정도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반죽은 호두보다 조금 크게 떼어 밀가루를 뿌린 작업대 위에서 굴린다. 양 끝이 둥글고 가운데가 통통한 반 시가 모양으로 만든 뒤 가벼운 고기 육수나 소금물에 넣어 삶는다.
라바톤이 물 위로 떠오르면 잠시 더 익힌 뒤 구멍 국자로 조심스럽게 건진다. 리따 빠로디의 공식 전통 조리법에서는 따뜻한 라바톤에 버터 한 조각과 그라나 치즈를 뿌려 먹는다.
삶은 라바톤을 오븐용 그릇에 담고 세이지로 향을 낸 버터와 치즈, 빵가루를 올려 노릇하게 굽는 조리법도 널리 알려져 있다. 어느 방식이든 리코따의 부드러운 맛과 채소의 향을 가리지 않도록 소스를 지나치게 무겁게 만들지 않는 것이 좋다.
라바톤은 특히 부활절 무렵 즐겨 먹었다. 목동들이 산으로 이동하던 시기와 봄나물, 달걀, 신선한 리코따를 구할 수 있는 때가 부활절과 겹쳤기 때문이다. 계절의 변화와 가축의 이동, 식재료의 순환이 하나의 음식 안에 자연스럽게 담긴 셈이다.
오랫동안 리따 빠로디와 프라스케타 일대에서만 알려졌던 라바톤은 1981년 마을 축제에 등장하면서 알레산드리아 지역 밖으로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1999년에는 라바톤을 알리고 보호하기 위한 협회가 만들어졌고, 2002년에는 피에몬테의 전통 농식품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오늘날 리따 빠로디의 라바톤은 알레산드리아시의 De.C.O., 즉 지역 전통음식 인증으로도 보호받고 있다.
라바톤 알레싼드리니는 화려하거나 값비싼 음식은 아니다. 그러나 봄의 들풀과 치즈, 달걀, 묵은 빵을 버리지 않고 한데 모은 반죽에는 목동과 농가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부드러운 리코따와 근대의 향, 녹인 버터와 치즈의 고소함이 어우러지는 라바톤. 피에몬테의 음식이 송로버섯과 바롤로 같은 고급 식재료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따뜻하고 소박한 프리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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