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와인은 술이면서 동시에 음식이다.
한국에서는 술을 식사 후에 마시거나 식사와 별개로 즐기는 경우가 많지만, 이탈리아에서는 식사와 함께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별한 날뿐 아니라 평범한 가정의 점심과 저녁 식탁에도 와인이 오르는 경우가 많다.
이탈리아는 거의 모든 주(州)에서 와인을 생산한다. 지역마다 기후와 토양이 달라 와인의 맛과 향도 크게 다르다. 그래서 이탈리아 와인을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지역별로 살펴보는 것이다.
북서부의 피에몬테는 이탈리아 최고의 와인 산지 가운데 하나다. 내가 이탈리아에 오기 전부터 좋아했던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에 오기 전 미국에서 3년 동안 살았는데, 당시 내가 가장 좋아하던 와인은 바롤로였다. 스테이크와 함께 마시면 그 깊은 향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이탈리아에 온 후 당시 남자친구의 여동생과 함께 대형 슈퍼마켓에 장을 보러 갔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미국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바롤로가 진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진열대에 있던 바롤로를 여러 병 사서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는 모두 네비올로 품종으로 만든다. 향이 깊고 숙성 잠재력이 뛰어나며, 잘 숙성된 와인은 붉은빛보다 벽돌색이나 갈색 기운이 살짝 돌기도 한다.
이런 와인들은 브라사토 같은 소고기 요리, 송로버섯, 사냥고기, 숙성 치즈와 잘 어울린다.

동쪽의 베네토로 가면 아마로네와 발폴리첼라가 유명하다. 두 와인 모두 풍부한 향과 바디감을 지녀 육류 요리나 숙성 치즈와 좋은 조화를 이룬다.
베네토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프로세코(Prosecco)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이탈리아 스파클링 와인 가운데 하나로, 식전주나 아페리티보로 즐겨 마신다.
최근에는 모토GP 시상식에서도 샴페인 대신 프로세코를 사용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프로세코는 크게 세 가지 스타일로 나뉜다. 브뤼(Brut)는 가장 드라이하고, 엑스트라 드라이(Extra Dry)는 약간의 단맛이 있으며, 드라이(Dry)는 이름과 달리 가장 달콤한 스타일이다. 발도비아데네 Valdobbiadene 지역 프로세코가 뛰어나다.
보통 안티파스토나 해산물 요리에 잘 어울린다. 저녁 식사 전 광장의 노천카페에서 프로세코 한 잔과 함께 올리브, 치즈, 작은 피자 조각을 즐기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것이 이탈리아식 아페리티보의 대표적인 풍경이다.
베네토의 대표적인 화이트 와인으로는 소아베가 있다. 신선한 산미가 있어 생선 요리나 채소 요리와 잘 어울린다.

내가 살고 있는 에밀리아 로마냐로 내려오면 볼로냐 지역에서는 산조베제 디 로마냐가 대표적인 레드 와인이다. 토스카나의 키안티와 같은 산조베제 품종으로 만들지만 지역에 따라 다른 개성을 보여준다.
화이트 와인으로는 피노 그리지오와 피뇰레토를 많이 마신다. 둘 다 산뜻하고 깔끔해 생선 요리나 가벼운 전채요리에 잘 어울린다.
모데나에서는 람브루스코가 유명하다. 기포가 있는 레드 와인으로 오랫동안 값싼 와인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품질 향상과 함께 재평가되고 있다.
람브루스코는 크게 소르바라, 그라스파로사, 살라미노로 나뉜다. 소르바라는 섬세하고 우아하며, 그라스파로사는 색이 짙고 풍미가 강하다. 살라미노는 그 중간 정도의 성격을 지닌다.
당도에 따라서도 나뉘는데, 세코는 드라이하고 산미가 좋아 프로슈토나 살라미 같은 육가공품과 잘 어울린다. 아마빌레와 세미세코는 약간의 단맛이 있으며, 돌체는 가장 달콤한 스타일이다.
외국인들은 람브루스코를 단 와인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 식당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드라이한 세코다. 프로슈토, 모르타델라, 파르미자노 레지아노가 놓인 식탁에 차갑게 식힌 람브루스코 한 잔이 올라오면 그 자체가 에밀리아 로마냐의 맛이라고 할 수 있다.

중부 토스카나의 대표 와인은 키안티다. 산조베제 품종으로 만들어지며 특유의 산미 덕분에 피오렌티나 스테이크나 멧돼지 라구와 잘 어울린다.
화이트 와인으로는 베르나차 디 산 지미냐노가 유명하며 생선이나 닭고기 요리에 잘 맞는다.

남부 캄파니아 지방에서는 화이트 와인의 존재감이 크다. 대표적인 와인은 팔랑기나로, 남부의 햇살을 담은 듯 향긋하고 신선한 맛이 특징이다. 해산물 파스타, 문어요리, 모차렐라 디 부팔라와 잘 어울린다.
레드 와인으로는 알리아니코가 유명하며 양고기나 진한 육류 요리와 좋은 조화를 이룬다.
시칠리아에서는 에트나 화산 주변에서 생산되는 와인들이 유명하다. 에트나 로소는 참치 스테이크나 구운 고기, 숙성 치즈와 잘 어울리고, 에트나 비앙코는 생선과 해산물 요리에 잘 맞는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복잡한 규칙보다 단순한 원칙을 따른다.
바다에서 나는 음식에는 화이트 와인, 육류에는 레드 와인.
그리고 가장 중요한 원칙은 그 지역 음식에는 그 지역 와인을 마시는 것이다.
토스카나에서는 키안티를, 에밀리아 로마냐에서는 산조베제와 람브루스코를, 시칠리아에서는 에트나 와인을 마신다.
수백 년 동안 함께 발전해 온 음식과 와인의 조합이기 때문에 실패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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