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는 경우가 많지만, 이탈리아에서는 과일이 식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경우가 많다.
여름이면 잘 익은 복숭아 한 개, 무화과 몇 알, 차갑게 식힌 멜론 몇 조각이 훌륭한 디저트가 된다.
가정식은 물론 식당에서도 제철 과일을 늘 준비해 두었다가 생으로 먹거나, 남으면 케이크나 잼으로 만들어 활용한다.
과일을 무척 좋아했던 나도 정원이 있는 집으로 이사하자마자 과일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농원에서 석류나무, 사과나무, 모과나무, 살구나무, 체리나무, 복숭아나무를 사 왔고, 울타리를 따라 산딸기인 람포네(Rampone)도 심었다.
나름 병충해에 강하다는 품종들로 골랐지만, 햇빛이 부족한 뒷마당은 과수원으로는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게다가 농약을 사용하고 싶지 않아 나무들이 스스로 버텨내길 기대하며 방치했더니 결국 복숭아나무와 사과나무는 병충해를 이기지 못하고 베어내야 했다.
그래도 양지바른 곳에 심은 석류나무는 해마다 자신의 몸집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큰 열매를 맺는다. 모과나무 역시 벌레 피해는 있지만 풍성하게 열매를 달고, 체리나무도 꾸준히 수확을 안겨준다.
내가 사는 동네는 복숭아 산지로 유명하다. 인근의 산 조반니 인 페르시체토(San Giovanni in Persiceto)라는 지명에도 복숭아를 뜻하는 '페르시카(persica)'에서 유래한 이름이 남아 있을 정도다. 지금은 예전만 못하지만, 한때는 이 지역 곳곳이 복숭아 과수원이었다고 한다.

이탈리아 각 지역의 대표적인 과일들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북서부 피에몬테 지방은 헤이즐넛으로 유명하다. 물론 복숭아와 딸기도 많이 재배되지만, 피에몬테를 대표하는 과일이라면 단연 헤이즐넛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초콜릿인 바치(Baci)나 페레로 로셰(Ferrero Rocher)에도 이 지역의 헤이즐넛이 사용된다.
북동부 트렌티노 알토 아디제 지방은 사과의 왕국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멜린다(Melinda)'는 이탈리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과 브랜드다.
이탈리아에서는 붉은 사과는 주로 생으로 먹고, 노란 골든 딜리셔스 품종은 오븐에 굽거나 케이크 재료로 사용한다. 또한 오스트리아 문화의 영향을 받아 사과와 건포도, 계피를 넣어 만드는 슈트루델(Strudel)도 매우 인기 있는 디저트다.

롬바르디아와 에밀리아 로마냐의 경계에 위치한 만토바는 멜론으로 유명하다. 멜론은 생으로 먹기도 하지만, 얇게 썬 프로슈토 크루도를 감아 전채요리로 즐기기도 한다. 달콤한 멜론과 짭짤한 생햄의 조합은 의외로 훌륭하다.

에밀리아 로마냐는 복숭아와 배의 산지다.
복숭아로 만드는 대표 디저트는 '페스케 리피에네(Pesche Ripiene)'다. 복숭아 속을 파내고 아마레티 쿠키, 코코아, 달걀노른자를 채워 오븐에 구워낸 전통 후식이다.
배는 와인과 함께 조리하거나 케이크 재료로 사용하며, 때로는 숙성 치즈와 함께 곁들여 먹기도 한다.
토스카나를 대표하는 과일은 무화과다. 잘 익은 무화과에 프로슈토 크루도를 곁들여 단맛과 짠맛의 조화를 즐기는 것은 토스카나 사람들에게 매우 익숙한 식문화다.

페루자와 아시시가 있는 움브리아 지방에서는 검은 체리와 산딸기가 유명하다. 이 과일들로 만드는 크로스타타는 여름철 대표 디저트 중 하나다.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나폴리가 있는 캄파니아 지방이 나온다. 이곳은 무엇보다 소렌토 레몬으로 유명하다.
소렌토 레몬으로 만든 '델리지아 알 리모네(Delizia al Limone)'는 레몬 크림을 채운 스펀지 케이크이며, '리몬첼로(Limoncello)'는 차갑게 마시는 달콤한 레몬 리큐어다.

그리고 이탈리아 남쪽의 거대한 섬 시칠리아는 과일의 보고라 불릴 만하다.
오렌지, 레몬, 피스타치오, 무화과, 선인장 열매까지 풍부한 농산물을 자랑한다. 특히 시칠리아의 붉은 오렌지인 아란차 로사(Arancia Rossa)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그중 타로코(Tarocco) 품종은 당도가 높고 산미가 적어 주스용으로 특히 인기가 많다.
피스타치오 역시 시칠리아를 대표하는 농산물이다. 오늘날 젤라토, 카놀리, 케이크 등 수많은 시칠리아 디저트에서 피스타치오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북쪽 트렌티노에서는 사과가, 토스카나에서는 무화과가, 남쪽에서는 레몬과 오렌지가 식탁 위에 오른다.
지역마다 재배되는 과일은 달라도 계절의 맛을 즐기는 마음만큼은 같다.
이탈리아의 코스요리는 에스프레소가 아니라, 햇살을 머금은 한 조각의 과일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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