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아 로마냐(Emilia-Romagna)는 하나의 지역처럼 불리지만 사실은 서로 다른 두 지역이 합쳐진 이름이다.
내륙의 **에밀리아(Emilia)**와 아드리아해 연안의 로마냐(Romagna).
지도에서 보면 하나의 주(州)이지만 음식 문화는 생각보다 많이 다르다.
볼로냐, 모데나, 파르마가 있는 에밀리아는 전통적으로 육류와 유제품 문화가 발달했다.
반면 리미니, 라벤나를 중심으로 한 로마냐는 해산물 요리가 강세를 보인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흔히 떠올리는 에밀리아 로마냐의 대표 음식들, 예를 들면 라자냐, 라구 알라 볼로네제, 모르타델라, 파르미자노 레지아노, 또르텔리니는 대부분 에밀리아 지역에서 탄생한 음식들이다.
에밀리아는 오래전부터 비교적 부유한 지역이었다.
이탈리아 남부처럼 올리브유가 풍부한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버터와 돼지기름(Strutto)을 많이 사용했다.
음식을 들여다보면 그 지역의 역사와 생활 방식까지 자연스럽게 보이곤 한다.

라구는 무엇일까
한국에서는 흔히 "볼로네제 소스"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은 보통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그냥 **라구(Ragù)**다.
원래 라구는 특정한 소스를 뜻하는 말이 아니다.
고기를 넣어 오랫동안 끓여 만든 소스를 통틀어 라구라고 부른다.
그래서 이탈리아에는 수많은 종류의 라구가 존재한다.
멧돼지 라구, 오리고기 라구, 토끼고기 라구도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라구 알라 볼로네제(Ragù alla Bolognese)**다.

집집마다 다른 라구
재미있는 것은 같은 에밀리아 안에서도 레시피가 조금씩 다르다는 점이다.
볼로냐 사람과 모데나 사람의 라구도 차이가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다시 집집마다 다르다.
토마토를 많이 넣는 집이 있는가 하면 거의 넣지 않는 집도 있다.
우유를 넣는 집도 있고 넣지 않는 집도 있다.
판체타를 넉넉히 넣는 집도 있다.
결국 라구는 정답이 있는 음식이 아니라 가족의 입맛이 완성하는 음식이다.
우리 시어머니의 라구는 의외로 단순했다.
간 돼지고기와 부추, 약간의 파사타 디 포모도로(passata di pomodoro), 그리고 오레가노만 넣어 만드셨다.
재료만 들으면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는데도 늘 깊고 풍부한 맛이 났다.
나는 한동안 시어머니의 라구를 그대로 따라 만들어 보려고 애썼지만 결국 같은 맛을 내지는 못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포기하고 나만의 라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소고기만 사용하고, 어떤 날은 소고기에 소시지 고기를 섞는다.
소프리토를 많이 넣어 보기도 하고 줄여 보기도 한다.
양파만 사용하기도 하고, 아예 넣지 않을 때도 있다.
토마토 페이스트의 양을 늘려 보기도 하고 줄여 보기도 하고, 버터의 양도 매번 조금씩 달라진다.
그렇게 만들다 보면 늘 조금씩 다른 라구가 완성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라구로 라자냐를 만들면 언제나 맛있다.
그래서 누군가 "진짜 라구 레시피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탈리아 사람들은 대개 웃으며 말한다.
"우리 집 것이 진짜지."
냉동고 속의 라구
라구는 한 번 만들기 시작하면 작은 냄비로 만들지 않는다.
몇 시간씩 끓여야 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큰 냄비 가득 만든다.
완성된 라구는 작은 통이나 병에 나누어 담아 냉동 보관한다.
먹고 싶을 때 꺼내 데우고 파스타만 삶으면 한 끼가 완성된다.
이탈리아 슈퍼마켓에 가면 아예 **"Per Ragù"**라고 적힌 다진 고기를 쉽게 볼 수 있다.
대부분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섞어 놓은 제품이다.
라구는 특별한 날에만 먹는 음식이 아니라 일상 속에 늘 준비되어 있는 음식인 셈이다.
어머니가 싸 주는 음식
주말에 자녀들이 집에 오면 이탈리아 어머니들은 이것저것 챙겨 보낸다.
그 가운데 빠지지 않는 것이 라구다.
혼자 사는 대학생 아들이나 직장인 딸이 돌아갈 때면 작은 병이나 통에 라구를 가득 담아 준다.
파스타만 삶으면 바로 집밥 한 끼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구는 단순한 소스가 아니다.
냄비 안에서 몇 시간 동안 천천히 끓어오르며 만들어지는 가족의 맛이다.
그리고 에밀리아 사람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담긴 음식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요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에밀리아 로마냐 음식 이야기 ⓺ 스폴리아, 모든 파스타의 시작 (0) | 2026.06.14 |
|---|---|
| 에밀리아 로마냐 음식 이야기 ⓹ 라구 만들기 (0) | 2026.06.13 |
| 에밀리아 로마냐 음식 이야기 ③ – 모데나 산지의 숨은 별미, 보를렝기 (0) | 2026.06.13 |
| 에밀리아 로마냐 음식 이야기 ② – 뇨코 프리토 (Gnocco Fritto) (0) | 2026.06.13 |
| 에밀리아 로마냐 음식 이야기 ①산속에서 온 작은 빵, 티젤레(Tigelle) (0) | 2026.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