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전통 파스타를 이야기하면서 그리차(Gricia)를 빼놓을 수는 없다.
아마트리차나는 이미 이전 글에서 소개했으니, 이번에는 로마의 4대 전통 파스타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메뉴인 그리차를 소개하려 한다.
그리차는 흔히 카르보나라의 원형이라고 불린다. 실제로 재료를 보면 카르보나라에서 달걀만 빠진 형태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구안찰레,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 후추 그리고 파스타. 단 네 가지 재료만으로 완성되는, 로마 요리의 단순함과 깊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음식이다.
그리차의 유래에는 여러 설이 있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로마 근교 라치오 지방의 **그리차노(Grisciano)**라는 작은 마을에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설은 로마에서 활동하던 스위스계 빵 장수들을 '그리치(Grici)'라고 불렀고, 이들이 즐겨 먹던 음식이라는 데서 이름이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어느 쪽이든 지금의 로마를 대표하는 전통 파스타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또한 많은 음식 연구가들은 그리차를 로마 4대 파스타의 '어머니'라고 부른다. 여기에 토마토가 더해지면 아마트리차나가 되고, 달걀이 더해지면 카르보나라가 되기 때문이다. 단순한 한 접시가 여러 명작 파스타의 출발점이 된 셈이다.
그리차는 카르보나라보다 만드는 방법도 훨씬 간단하다. 구안찰레에서 나온 기름에 삶은 파스타를 넣고, 면수와 페코리노 로마노를 이용해 소스를 유화시키면 된다. 적당량의 면수를 넣어 크림처럼 부드러운 질감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재료는 적지만 결코 단순한 맛은 아니다. 구안찰레의 진한 풍미와 페코리노 로마노의 짭조름한 맛, 그리고 후추의 향이 어우러져 로마 사람들이 수백 년 동안 사랑해 온 이유를 한 입만으로도 느낄 수 있다.
카르보나라를 좋아한다면, 그보다 더 담백하고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는 그리차도 꼭 한 번 맛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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