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당시 남자친구였던 지금의 남편과 함께 움브리아의 아름다운 도시 오르비에토로 여행을 갔다.
첫날 저녁을 먹기 위해 들어간 식당은 한국의 여행 프로그램에도 소개된 적이 있을 만큼 유명한 곳이었다.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주인은 반갑다며 한국 방송팀이 두고 간 선물들을 하나씩 꺼내 보여주었다. 그중에는 안동 하회탈도 있어 낯선 이탈리아에서 뜻밖의 친근함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만 해도 이탈리아 음식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지역마다 전통 음식이 다르다는 사실도 전혀 몰랐다. 메뉴를 보다가 익숙한 재료인 피망이 들어간 파스타를 주문했고, 남편은 **피치 알 알리오네(Pici all'Aglione)**를 선택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주문했던 피망 파스타는 관광객이나 이탈리아 음식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메뉴였던 것 같다. 하지만 내 입맛에는 전혀 맞지 않았다. 몇 번 포크를 돌리다가 결국 포기했고, 맞은편에서 맛있게 피치를 먹는 남편의 접시만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남편은 웃으며 접시를 바꿔주었다. 이탈리아 생활 초창기에는 이런 일이 꽤 자주 있었다. 내가 주문한 음식보다 남편의 음식이 훨씬 맛있어 보여 서로 접시를 바꿔 먹는 일이 흔했다.
피치는 토스카나를 대표하는 전통 파스타다. 특히 **시에나(Siena)**와 발 디 키아나(Val di Chiana) 지방에서 오래전부터 만들어 먹던 손반죽 파스타로 알려져 있다. 밀가루와 물만으로 반죽을 만들어 손으로 길게 밀어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겉모습은 굵은 스파게티를 닮았지만 훨씬 탄력이 있고 씹는 맛이 살아 있다.
피치를 이용한 대표적인 요리가 바로 피치 알 알리오네다.
많은 사람들이 알리오네를 단순히 '큰 마늘'이라고 생각하지만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알리오네(Aglione della Valdichiana)**는 토스카나 발 디 키아나 지역에서 재배되는 고유 품종의 거대한 마늘이다. 일반 마늘보다 크기가 훨씬 크지만 향은 부드럽고 매운맛이 적으며 은은한 단맛이 특징이다. 현재는 이 지역의 대표적인 슬로푸드 식재료로도 알려져 있다.
정통 피치 알 알리오네는 알리오네 마늘과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 토마토, 약간의 페페론치노만으로 만드는 매우 단순한 요리다. 의외로 치즈를 넣지 않는 것이 전통 레시피이며, 마늘의 풍미가 주인공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물론 피치는 어떤 파스타보다 응용 범위가 넓다. 라구 소스는 물론, 치안티 지방의 멧돼지 라구, 버섯 소스, 치즈 소스, 카초 에 페페, 카르보나라 등 거의 모든 파스타 소스와 잘 어울린다. 하지만 토스카나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조합은 여전히 소박하면서도 재료의 맛을 가장 잘 살리는 피치 알 알리오네일 것이다.
복잡한 기술도 화려한 재료도 필요 없다. 좋은 밀가루와 좋은 올리브오일, 그리고 향긋한 마늘만 있으면 토스카나 사람들의 오랜 전통을 그대로 맛볼 수 있는 음식이 바로 피치 알 알리오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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