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요리

여행길의 에너지가 되어 주었던 시에나의 과자, 카발루치(Cavallucci)

corita40019 2026. 7. 21. 17:51

빤포르테와 리챠렐리에 이어 소개할 시에나의 전통 돌체는 카발루치(Cavallucci)다.

 

앞서 소개한 리챠렐리가 눈처럼 하얗고 부드러운 아몬드 과자라면, 카발루치는 훨씬 거칠고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다. 동그랗고 울퉁불퉁한 모양만 보면 그다지 화려하지 않지만, 반으로 잘라 보면 호두와 설탕에 절인 오렌지 껍질이 박혀 있다. 한입 먹으면 아니스와 계피를 비롯한 향신료 향도 진하게 퍼진다.

 

카발루치의 기본 재료는 밀가루와 설탕 또는 꿀, 호두, 설탕에 절인 오렌지 껍질, 아니스 씨앗과 여러 향신료다. 달걀이나 버터를 사용하지 않는 전통 레시피도 많다. 겉은 살짝 단단하지만 속은 완전히 바삭하기보다는 묵직하고 쫀득한 편이다. 재료가 풍성하게 들어간 부드러운 쿠키를 기대하면 조금 낯설 수 있지만, 씹을수록 호두와 과일, 향신료의 복합적인 맛이 살아난다.

 

이름인 ‘카발루치’는 이탈리아어로 ‘작은 말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과자 모양이 말을 닮아서 붙은 이름은 아니다.

 

과거에는 장거리를 여행하는 마차가 역참에 멈추면 말도 쉬고 새로운 말로 교체해야 했다. 이곳에서 말을 돌보고 교체하던 사람들을 ‘카발라이(Cavallai)’라고 불렀는데, 이들이 카발루치를 자주 먹었던 데서 이름이 생겼다고 전해진다. 여행자와 마부들도 시골의 여관이나 역참에서 카발루치를 와인에 적셔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토스카나주 Vetrina Toscana – Cavallucci di Siena

 

카발루치가 긴 여행길의 음식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보관성이 좋고 작은 크기에 비해 열량이 높았기 때문이다. 설탕과 꿀, 밀가루, 호두가 들어간 단단한 과자는 쉽게 상하지 않았고, 말에 의지해 오랫동안 이동해야 했던 사람들에게 간편한 에너지원이 되었을 것이다.

 

카발루치의 전신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만들어지던 ‘비리쿠오콜리(Biriquocoli)’라는 과자로 여겨진다. 16세기 무렵의 기록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호두와 설탕절임 과일, 아니스와 계피 등의 향신료가 더해져 현재의 형태로 발전했다. 향신료가 풍부하게 들어간 모습은 중세부터 향신료 교역으로 번성했던 시에나의 역사와도 잘 어울린다. La Cucina Italiana – Cavallucci di Siena

 

오늘날 카발루치는 빤포르테, 리챠렐리와 함께 시에나의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전통 과자로 여겨진다. 표면을 예쁘게 장식하거나 모양을 정확히 다듬기보다는 손으로 투박하게 빚어 굽는 것이 오히려 이 과자다운 모습이다.

 

카발루치는 그냥 먹는 것보다 커피나 차, 빈 산토(Vin Santo) 같은 달콤한 와인과 곁들이면 훨씬 맛있다. 조금 단단해진 카발루치를 와인에 살짝 적시면 과자가 부드러워지는 동시에 아니스와 계피, 오렌지의 향이 더욱 선명하게 살아난다.

 

리챠렐리가 귀하고 우아한 시에나의 모습을 보여 준다면, 카발루치는 말과 마차가 오가던 길 위의 시에나를 떠올리게 한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오래 보관할 수 있고, 작은 과자 하나만으로 여행자의 허기를 채워 주었던 실용적이고 정겨운 돌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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