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카나의 돌체를 계속 살펴보다 보면 케이크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낯선 음식을 만나게 된다. 바로 밤가루로 만드는 카스타냐초(Castagnaccio)다.
카스타냐초는 밤가루에 물과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을 섞고, 건포도와 잣, 호두, 로즈메리를 올려 얇게 구운 전통 음식이다. 일반적인 케이크처럼 달걀이나 버터, 우유, 베이킹파우더를 넣지 않는다. 전통적인 레시피에는 설탕조차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밤가루와 건포도 자체의 단맛만으로 완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스타냐초를 처음 먹으면 우리가 생각하는 달콤하고 폭신한 케이크와는 상당히 다르게 느껴진다. 부풀어 오르지 않아 낮고 납작하며, 식감은 촉촉하고 묵직하다. 밤의 자연스러운 단맛에 올리브오일과 로즈메리의 향이 더해져 달콤함과 짭짤함의 경계에 있는 독특한 맛을 낸다.
카스타냐초라는 이름은 밤을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카스타냐(Castagna)’에서 나왔다. 토스카나에서는 지역에 따라 발디노(Baldino), 파토나(Pattona), 밀리아초(Migliaccio), 기리기오(Ghirighio) 등 여러 이름으로도 불린다.
카스타냐초의 기원은 토스카나와 아펜니노 산악 지역의 생활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과거 산간 지역에서는 밀을 충분히 재배하기 어려웠지만 밤나무는 숲에서 풍부하게 자랐다. 사람들은 가을에 수확한 밤을 말린 뒤 가루로 만들어 빵과 폴렌타, 죽과 과자를 만들었다. 그래서 밤은 오랫동안 ‘가난한 사람들의 빵’ 또는 ‘나무에서 열리는 빵’이라고 불릴 만큼 중요한 식량이었다.
밤가루와 물만으로도 배를 든든하게 채울 수 있었던 카스타냐초는 처음부터 화려한 디저트라기보다 농민들의 소박한 주식이나 간식에 가까웠다. 이후 생활이 풍요로워지면서 건포도와 잣, 호두, 로즈메리 등이 더해져 오늘날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카스타냐초’라는 말은 이미 15세기 중반의 문헌에 등장한다. 1553년 오르텐시오 란도의 저서에는 루카 출신의 필라데(Pilade da Lucca)가 카스타냐초를 처음 만들고 칭찬을 받았다는 내용도 기록되어 있다. 실제 발명자를 확정하는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적어도 르네상스 시대에 이미 토스카나에서 널리 알려진 음식이었다는 점을 보여 주는 흥미로운 기록이다. 아카데미아 델라 크루스카의 카스타냐초 어원 자료
오늘날에는 대표적인 토스카나 음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카스타냐초와 비슷한 음식은 리구리아, 피에몬테, 에밀리아로마냐를 비롯한 아펜니노 산맥 주변 여러 지방에서도 만날 수 있다. 밤을 주요 식량으로 사용했던 지역들이 비슷한 음식을 각자의 이름과 방식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카스타냐초의 표면이 구워지면서 자연스럽게 갈라지는 것도 특징이다. 갈색 표면 사이로 잣과 건포도, 호두가 보이고 로즈메리 잎이 향을 더한다. 너무 두껍게 만들면 무겁고 떡처럼 될 수 있어 토스카나에서는 보통 얇게 구워 먹는다.
따뜻할 때보다 살짝 식힌 뒤 먹으면 밤과 로즈메리의 맛이 더 잘 어우러진다. 리코타 치즈를 곁들이거나 밤꿀을 조금 뿌려도 좋고, 빈 산토(Vin Santo) 또는 어린 와인인 비노 노벨로(Vino Novello)와도 잘 어울린다. La Cucina Italiana의 토스카나식 카스타냐초
밀가루가 들어가지 않아 자연스럽게 글루텐프리이며, 달걀과 유제품도 사용하지 않아 비건 디저트로 즐길 수도 있다. 그러나 카스타냐초는 특별한 식단을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음식이 아니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았던 사람들이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밤과 물, 올리브오일로 만들어 낸 오래된 지혜의 음식이다.
화려한 크리스마스 돌체와는 또 다른 매력이다. 카스타냐초 한 조각에는 가을의 밤나무 숲과 토스카나 농민들의 검소한 생활, 재료 본연의 단맛을 살리는 이탈리아 요리의 철학이 함께 담겨 있다.

토스카나 지방과 식재료, 음식 리스트를 보시려면 아래를 클릭해 주세요.
https://corita40019.tistory.com/271
토스카나(Toscana) – 소박함 속에 담긴 최고의 미식
이탈리아 중부에 위치한 토스카나는 피렌체(Florence), 시에나(Siena), 피사(Pisa), 루카(Lucca), 아레초(Arezzo)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를 품고 있는 지역이다. 르네상스의 발상지이자 예술과 문화의
corita40019.tistory.com
'이탈리아 요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피렌체 골목에서 만나는 서민의 샌드위치, 람프레도또(Lampredotto) (1) | 2026.07.21 |
|---|---|
| 피렌체의 카니발을 알리는 오렌지 향 케이크, 스끼아차따 알라 피오렌티나 (1) | 2026.07.21 |
| 여행길의 에너지가 되어 주었던 시에나의 과자, 카발루치(Cavallucci) (1) | 2026.07.21 |
| 눈처럼 하얀 시에나의 아몬드 과자, 리챠렐리(Ricciarelli) (0) | 2026.07.21 |
| 시에나의 중세 크리스마스 디저트, 빤포르테(Panforte) (0) | 2026.0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