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를 먹고 나면 대부분 껍질은 버려진다. 그러나 사르데냐 누오로에서는 그 껍질을 며칠 동안 물에 담가 쓴맛을 빼고, 꿀과 아몬드를 더해 향긋한 축하 과자로 만든다. 바로 아란짜다(Aranzada)이다.
사르데냐어로는 ‘사란짜다(S’Aranzada)’ 또는 ‘사란짜다 누고레사(S’Arantzada nugoresa)’라고 부른다. ‘아란짜다’는 오렌지를 뜻하는 말에서 유래해 우리말로 옮기면 ‘오렌지 과자’ 또는 ‘누오로식 오렌지 당과’ 정도가 된다.
아란짜다는 얇게 썬 오렌지 껍질과 꿀, 아몬드라는 세 가지 재료를 중심으로 만든다. 밀가루와 달걀, 버터가 들어가지 않지만 오렌지의 향과 꿀의 단맛, 볶은 아몬드의 고소함이 겹치면서 매우 복합적인 맛을 낸다.
누오로와 바르바자의 축하 과자
아란짜다는 사르데냐 중부 누오로와 바르바자, 바로니에 지역에 전해지는 과자이다. 특히 누오로식 아란짜다가 가장 유명하다.
과거에는 결혼식과 세례식, 종교 축일처럼 가족의 중요한 행사를 위해 가정에서 만들었다. 오렌지 껍질을 손질하는 데 며칠이 걸리고, 꿀에 넣은 뒤에도 눌어붙지 않도록 오랫동안 저어야 했기 때문에 평소에 간단히 만드는 간식은 아니었다.
누오로에는 “좋은 결혼식인지는 아란짜다의 품질을 보면 알 수 있다”는 말도 전해진다. 손님에게 내놓은 아란짜다가 향긋하고 윤기가 나며 아몬드가 풍성하면 그만큼 정성을 들여 혼례를 준비했다는 뜻이었다.
작은 종이컵에 한입 분량씩 담은 아란짜다는 결혼식 상을 장식하는 동시에 손님들에게 나누어 주는 귀한 답례 과자였다.
버려지는 껍질을 귀한 과자로 바꾸는 과정
아란짜다의 핵심은 오렌지 껍질의 쓴맛을 알맞게 제거하는 것이다. 향이 풍부하고 표면을 처리하지 않은 오렌지의 껍질에서 흰 속껍질을 최대한 제거하고, 겉의 주황색 부분을 가느다란 실처럼 썬다.
썬 껍질은 찬물에 이틀에서 며칠 동안 담가두며 물을 여러 번 갈아준다. 이 과정이 부족하면 과자에 강한 쓴맛이 남고, 지나치게 오래 담그면 오렌지 특유의 향까지 약해진다.
쓴맛을 뺀 껍질은 살짝 삶아 부드럽게 만든 뒤 물기를 충분히 제거한다. 여기에 꿀을 넣고 약한 불에서 천천히 졸인다. 가느다란 껍질이 꿀을 흡수하면서 반투명한 황금빛으로 변할 때까지 계속 저어야 한다.
마지막에는 껍질을 벗겨 살짝 볶은 아몬드를 가늘게 썰어 넣는다. 오렌지 껍질의 부드럽고 쫀득한 식감 사이로 아몬드가 바삭하게 씹히면서 과자가 완성된다.
누오로식과 다른 지역 방식의 차이
사르데냐에는 아란짜다를 만드는 방식이 한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역에 따라 오렌지 껍질을 조금 굵게 썰고 꿀과 설탕 시럽에 졸인 뒤, 통아몬드를 넣어 약 1cm 두께로 펼치기도 한다.
이렇게 굳힌 아란짜다는 또로네나 견과류 강정처럼 마름모꼴 또는 작은 사각형으로 자른다. 비교적 단단하고 쫀득해 손으로 집어 먹기 좋다.
반면 전통적인 아란짜다 누오레제는 오렌지 껍질을 아주 가는 실처럼 썬다. 꿀과 오렌지 껍질의 비율을 비슷하게 맞추고, 마지막에 막대 모양으로 썬 아몬드를 넣는다.
완성된 반죽을 단단히 눌러 자르기보다 작은 종이컵인 피로티니(Pirottini)에 가볍게 담아 모양을 살린다. 가느다란 오렌지 껍질과 아몬드가 서로 얽혀 있어 작은 황금빛 둥지처럼 보인다.
바티스타 구이소와 왕실에 알려진 아란짜다
아란짜다는 원래 누오로 가정에서 만들어 오던 과자였지만, 오늘날 알려진 ‘아란짜다 누오레제’를 널리 알린 인물은 제과사 바티스타 구이소(Battista Guiso)이다.
그는 1885년 누오로에 작은 제과 공방을 세우고 전통적인 오렌지 과자를 정교하게 다듬어 상품화했다. 이후 자신의 아란짜다를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여러 박람회에 출품해 파리와 칸, 마르세유 등에서 상을 받았다.
1901년에는 이 과자를 좋아했던 사보이아 왕가의 마르게리타 왕대비가 구이소를 왕실 공식 납품업자로 지정했다. 구이소의 공방은 제품 상자와 간판에 왕실 문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누오로의 작은 혼례 과자는 사르데냐 밖에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역사는 현재도 이어지는 아란짜다 제작사의 기록에 남아 있다.
구이소가 오렌지 껍질과 꿀로 만든 과자 자체를 처음 발명했다기보다는, 가정에서 전해지던 아란짜다를 일정한 품질의 세련된 누오로식 과자로 완성하고 외부에 알린 인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쌉싸름함과 달콤함이 함께 남는 맛
아란짜다는 꿀에 졸인 과자이지만 단맛만 강하지는 않다. 오렌지 껍질에서 남은 은은한 쌉싸름함과 산뜻한 감귤 향이 꿀의 단맛을 정리해준다.
처음에는 꿀의 부드러운 단맛이 느껴지고, 이어 쫀득한 오렌지 껍질과 바삭한 아몬드가 씹힌다. 마지막에는 오렌지 오일의 향과 아주 약한 쓴맛이 길게 남는다.
에스프레소나 홍차와 잘 어울리며, 모스카토 디 사르데냐나 베르나차 디 오리스타노 같은 향긋한 와인과 곁들여도 좋다. 치즈 플래터에 소량을 올리면 숙성 치즈의 짠맛과도 흥미로운 조화를 이룬다.
버려질 수 있는 오렌지 껍질에 시간과 정성을 더해 결혼식과 왕실에 어울리는 과자로 바꾼 아란짜다. 이 작은 황금빛 과자에는 재료를 남김없이 활용했던 사르데냐 사람들의 지혜와 누오로 제과 장인들의 섬세함이 함께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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