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데냐 길거리 음식의 네 번째 주인공은 파이네(Fainè)이다.
파이네는 병아리콩가루와 물,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 소금으로 만드는 얇은 화덕 음식이다. 생김새만 보면 치즈를 올리지 않은 얇은 피자나 팬케이크 같지만, 밀가루 반죽도 사용하지 않고 효모로 발효하지도 않는다.
반죽이라기보다 묽은 병아리콩물을 넓은 원형 팬에 붓고 매우 뜨거운 오븐에서 굽는다. 윗면과 가장자리는 바삭하게 익고 가운데는 부드럽고 촉촉하게 남는다.
사르데냐 전체에서 흔히 먹는 음식이라기보다는 사싸리(Sassari)와 누라(Nurra), 뽀르또 토레스(Porto Torres)를 중심으로 발달한 북서부 지역 음식이다.
제노바의 파리나타가 사르데냐에 도착하다
파이네의 뿌리는 리구리아의 병아리콩 음식 파리나타(Farinata)에 있다. 제노바 방언에서는 파이나(fainâ)라고 부르며, 이 이름이 사싸리에 전해져 파이네가 된 것으로 본다.
사싸리와 제노바는 중세부터 정치적·상업적으로 관계를 맺었다. 이 때문에 파리나타가 중세의 해상 교류를 통해 사르데냐에 전해졌다는 설명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오늘날 사싸리에서 먹는 파이네가 실제로 언제 정착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일부 조사에서는 20세기 초 바치챠(Baciccia)와 오토넬로(Ottonello)라고 불린 제노바 출신 상인들이 사싸리에 전문 화덕을 열면서 본격적으로 보급되었을 가능성을 더 높게 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르데냐 가족들이 이러한 가게를 이어받았고, 파이네 전문점과 노점, 피쩨리아로 빠르게 퍼졌다고 한다. 따라서 중세 제노바와의 관계가 음식의 배경을 만들었다면, 오늘날의 사싸리 파이네 문화는 20세기 도시의 화덕과 상점에서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La Cucina Italiana
네 가지 재료로 만드는 묽은 반죽
가장 기본적인 파이네에는 병아리콩가루와 물, 소금,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만 들어간다.
병아리콩가루에 물을 조금씩 부어 덩어리가 생기지 않도록 섞고 몇 시간 동안 그대로 둔다. 이 휴지 시간 동안 병아리콩가루가 물을 충분히 흡수하고, 표면에 떠오른 거품은 걷어낸다.
넓고 낮은 구리 팬이나 금속 팬에 올리브오일을 넉넉히 두르고 묽은 반죽을 붓는다. 두께는 일반적으로 0.5~1cm 정도이다. 지름 30cm 정도의 가정용 팬부터 1m 가까이 되는 전문점의 커다란 팬까지 사용한다.
매우 뜨거운 장작 화덕에 넣으면 표면에 황금빛 껍질이 생기고 군데군데 짙은 갈색 반점이 나타난다. 완성된 파이네는 피자처럼 삼각형 또는 불규칙한 조각으로 잘라 후추를 듬뿍 뿌려 먹는다.
이 기본 형태는 ‘파이네 아브루스젠티(Fainè abbrusgenti 또는 abbrusgienti)’라는 이름으로 사르데냐의 PAT 전통 농식품 목록에도 등재되어 있다. 사르데냐주 PAT 목록
아브루스젠티, 입을 데일 만큼 뜨겁게
‘아브루스젠티(abbrusgenti)’는 사싸리 방언으로 뜨겁게 달아오른 상태를 표현한다. 파이네가 화덕에서 막 나온 뜨거운 상태로 먹는 음식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는 이름이다.
과거 행상인들은 수레에 파이네를 싣고 다니며 뜨거운 파이네를 팔았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사싸리에서는 접시와 포크보다 기름종이 위에 파이네를 올려 손으로 먹는 방식이 잘 어울린다.
한입 베어 물면 가장자리와 윗면은 바삭하지만 가운데는 부드럽고 크리미하다. 병아리콩 특유의 구수함과 올리브오일의 과일 향, 갓 갈아 뿌린 후추의 매콤함이 어우러진다.
식으면 가운데가 단단해지고 표면의 바삭함도 줄어들기 때문에 가능한 한 화덕에서 나온 직후 먹는 것이 좋다.
사싸리에서는 소시지와 양파를 넣는다
제노바식 파리나타와 사싸리식 파이네의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추가 재료이다.
리구리아의 기본 파리나타는 병아리콩가루와 물, 올리브오일, 소금만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사싸리에서는 여기에 얇게 썬 양파나 잘게 부순 사르데냐 소시지를 넣는다. 양파와 소시지를 함께 넣은 버전도 인기 있다.
그 밖에도 안초비, 로즈메리, 버섯, 판체타, 아티초크, 주키니와 가지 등을 넣을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사싸리다운 조합으로는 양파와 살시차를 꼽는다.
양파는 화덕 안에서 달콤하게 익어 병아리콩의 구수함을 살리고, 살시차에서는 기름과 향신료가 흘러나와 파이네 전체에 진한 풍미를 더한다. 기본 파이네가 빵이나 전채처럼 가볍다면, 소시지를 넣은 파이네는 한 끼 식사에 가까울 정도로 든든하다.
같은 병아리콩가루, 서로 다른 이름
병아리콩가루와 물을 섞어 익히는 음식은 지중해 여러 지역에 존재한다.
리구리아에서는 파리나타 또는 파이나, 토스카나에서는 체치나(Cecina), 프랑스 니스에서는 소까(Socca)라고 부른다. 사르데냐에서는 사싸리의 파이네 외에도 카를로포르테에서 파이노(Fainò)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시칠리아의 파넬레(Panelle) 역시 병아리콩가루로 만들지만, 반죽을 끓여 굳힌 다음 기름에 튀긴다는 점에서 오븐에 굽는 파이네와 다르다.
같은 병아리콩가루 음식이 항구와 무역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지역마다 다른 이름과 조리법을 갖게 된 것이다.
밀가루도 효모도 들어가지 않는 음식
기본 파이네에는 밀가루와 효모, 유제품, 달걀이 들어가지 않는다. 따라서 본래의 레시피는 비건 음식이며 자연적으로 글루텐이 없다.
다만 식당이나 피쩨리아에서는 밀가루 피자와 같은 주방과 오븐을 사용할 수 있다. 셀리악처럼 미량의 글루텐에도 민감하다면 조리 공간과 교차 오염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병아리콩가루는 단백질과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포만감이 크다. 소박한 재료로 만들지만 따뜻한 파이네 몇 조각과 와인 한 잔이면 제법 든든한 식사가 된다.
길거리 음식이면서 사싸리 사람들의 저녁 식사
파이네는 조각으로 포장해 걸으면서 먹을 수 있어 길거리 음식으로 분류된다. 피쩨리아와 테이크아웃 가게에서도 쉽게 살 수 있다.
하지만 사싸리 사람들에게 파이네는 단순한 간식만은 아니다. 파이네만 전문적으로 굽는 오래된 가게에 친구들과 둘러앉아 뜨거운 파이네를 나누어 먹고 와인을 마시는 하나의 저녁 문화이기도 하다.
특히 뜨거운 음식이 잘 어울리는 늦가을부터 겨울 사이에 많이 찾는다. 전통적으로 10월부터 이듬해 3월 무렵까지 파이네 전문점의 화덕이 더욱 활발하게 달아올랐다. 사싸리 관광청
앞서 소개한 피쩨따 스폴리아가 칼랴리의 바와 아침을 상징한다면, 파이네는 사싸리의 화덕과 겨울밤을 떠올리게 한다. 제노바에서 건너온 병아리콩 음식이 양파와 사르데냐 소시지를 만나 이제는 누구도 빼놓을 수 없는 사싸리 음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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