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에는 여행자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지 사람들이 여름이면 가장 기다리는 파스타가 있다. 바로 **파스타 꼰 이 떼네루미(Pasta con i tenerumi)**다. 화려한 해산물도, 고급 치즈도 들어가지 않지만 시칠리아의 더운 여름을 가장 잘 표현하는 전통 가정식으로 손꼽힌다.
**떼네루미(Tenerumi)**는 애호박이나 박과 식물의 어린 줄기와 잎을 말한다. 시칠리아에서는 특히 긴 호박인 **주카 룽가(Zucca lunga)**의 부드러운 잎과 줄기를 사용한다. '떼네루미'라는 이름도 이탈리아어 tenero('부드럽다')에서 유래했으며, 어린잎 특유의 연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그대로 담고 있다.
이 요리는 팔레르모를 비롯한 시칠리아 서부에서 오래전부터 여름철 별미로 만들어졌다. 무더운 날씨에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도록 토마토와 마늘, 바질을 넣어 가볍게 국물이 있는 형태로 만드는 경우가 많으며, 여기에 짧은 파스타를 넣어 한 끼 식사로 즐긴다. 시칠리아 사람들에게는 어린 시절 할머니가 만들어 주던 추억의 음식이기도 하다.
재료는 단순하지만 맛은 의외로 깊다. 떼네루미에서 우러나는 부드러운 채소 향과 토마토의 산뜻한 산미, 올리브오일의 고소함이 어우러져 담백하면서도 시원한 국물 맛을 만든다. 여름철 입맛이 없을 때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날 시칠리아 밖에서는 떼네루미를 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어린 호박잎이나 시금치, 청경채, 어린 근대잎 등을 활용하기도 한다. 물론 전통의 맛과는 조금 다르지만, 부드러운 잎채소를 사용하면 비슷한 분위기를 충분히 재현할 수 있다.
파스타 꼰 이 떼네루미는 특별한 재료보다 계절이 주는 선물을 소중히 여기는 시칠리아 사람들의 식문화를 잘 보여주는 음식이다. 한 그릇 속에는 뜨거운 태양 아래 자란 채소와 소박한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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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문명이 빚어낸 맛의 섬, 시칠리아 전통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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