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요리

이탈리아 음식 이야기 ⑮액체 황금,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corita40019 2026. 6. 12. 19:47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를 본격적으로 접한 것은 미국에서 살게 되었을 때였다.

가끔 이탈리아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면 음식이 나오기 전에 꼭 빵과 올리브유를 먼저 내왔다.

처음에는 조금 의아했다. 한국에서는 빵을 먹을 때 버터를 곁들이는 것이 익숙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 조각 집어 올리브유에 찍어 먹어 보니 생각보다 훨씬 맛있었다. 고소하면서도 풋풋한 향이 있었고, 뒤에는 살짝 매운맛까지 느껴졌다.

그렇게 올리브유 맛에 익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이탈리아 식료품점에도 드나들게 되었다.

미국에 있던 그 가게는 지금 생각해도 참 인상적이었다.

치즈와 햄, 파스타와 와인뿐 아니라 올리브유 코너도 따로 있었는데, 여러 병의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와 잘게 깍둑썰기한 토스카나 빵이 항상 준비되어 있었다.

손님들은 와인을 시음하듯 빵에 올리브유를 찍어 맛을 본 뒤 마음에 드는 제품을 골랐다.

생산 지역은 어디인지,
수확 연도는 언제인지,
어떤 품종의 올리브를 사용했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이탈리아인들에게 좋은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는 단순한 식용유가 아니라는 것을.


올리브유와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는 무엇이 다를까?

한국 마트에 가 보면 모두 비슷한 병에 담겨 있어 차이를 알기 쉽지 않다.

하지만 올리브유는 생산 방식에 따라 품질이 크게 달라진다.

가장 좋은 등급이 바로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Extra Virgin Olive Oil)다.

올리브 열매를 수확한 뒤 화학 처리 없이 기계적인 방법으로만 압착해 얻는다. 또한 생산 과정에서 열을 가하지 않는다.

산도 역시 0.8% 이하라는 엄격한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반면 일반 올리브유는 정제 과정을 거친 오일과 버진 올리브유를 혼합한 제품이다. 가격은 저렴하지만 향과 풍미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주방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거의 항상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줄여서 EVOO다.


올리브는 어떻게 기름이 될까?

올리브 수확은 보통 10월에서 12월 사이에 이루어진다.

수확한 열매는 가능한 한 빨리 압착 공장으로 보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산화가 진행되어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올리브를 씻고 잎을 제거한 뒤 으깨고 반죽한 후 원심분리기를 이용해 기름을 분리한다.

예전에는 돌 맷돌을 사용했지만 지금은 대부분 현대식 설비를 사용한다.

하지만 한 가지는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열을 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병에 적힌 "Estratto a Freddo" 또는 "Cold Extraction"이라는 문구가 중요하다.

좋은 올리브유를 고를 때 꼭 확인하는 표시이기도 하다.


왜 이탈리아 올리브유가 유명할까?

물론 세계 최대 생산국은 스페인이다.

그리스 역시 훌륭한 올리브유를 생산한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탈리아 올리브유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양성 때문이다.

이탈리아에는 무려 500종이 넘는 올리브 품종이 있다.

포도 품종이 다양한 것처럼 올리브도 품종에 따라 맛과 향이 크게 달라진다.

덕분에 지역마다 전혀 다른 개성을 가진 올리브유가 만들어진다.

또한 지금도 많은 생산자들이 가족 단위 농장을 운영하며 수확부터 병입까지 직접 관리한다.


슈퍼마켓 올리브유와 농가 올리브유

요즘은 이탈리아의 유명 브랜드들도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외국산 올리브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병 뒷면을 보면 "EU산 올리브 혼합"이라고 적혀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반면 "100% Italiano" 또는 원산지가 명확하게 표시된 제품은 가격이 조금 더 높다.

나 역시 평소에는 슈퍼마켓에서 올리브유를 사지만 항상 원산지를 먼저 확인한다.

시댁에서는 오랫동안 모니니(Monini)를 사용해 왔다. 가격과 품질의 균형이 좋아 세일할 때면 여러 병 사 두곤 한다.

하지만 가끔은 훨씬 특별한 올리브유를 맛볼 기회도 있다.

풀리아에 사는 동료가 자기 집 올리브로 직접 짠 오일을 선물해 주기도 하고, 지인을 통해 작은 농장의 생산품을 구입하기도 한다.

그런 올리브유는 색깔부터 다르다.

갓 짜낸 초록빛이 살아 있고 향도 훨씬 강하다.

빵 한 조각만 있어도 훌륭한 한 끼가 될 정도다.


지역마다 다른 올리브유의 성격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토스카나 올리브유다.

아마 미국에서 처음 맛본 올리브유가 토스카나 제품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토스카나 올리브유는 풀 향과 아티초크 향이 강하고 목 뒤를 간질이는 매운맛이 특징이다.

신선할수록 그 매운맛이 강하다.

반면 남편은 에밀리아 로마냐 스타일을 좋아한다.

토스카나보다 부드럽고 균형이 좋아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리구리아 올리브유는 우아하고 섬세하다.

생선요리와 잘 어울리고, 유명한 리구리아 포카치아에도 듬뿍 사용된다.

풀리아 올리브유는 진하고 풍부하며, 시칠리아 올리브유는 과일향과 감귤류 향이 인상적이다.

같은 올리브유라도 지역에 따라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 흥미롭다.

 


좋은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고르는 법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탈리아 사람들도 생각보다 단순하게 고른다.

먼저 "Extra Virgin Olive Oil"이라고 적혀 있는지 확인한다.

수확 연도가 표시되어 있다면 최근 수확 제품을 선택한다.

병은 녹색이나 갈색처럼 빛을 차단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가능하면 DOP, IGP 인증이나 100% 이탈리아산 표시를 확인한다.

무엇보다 지나치게 싼 제품은 한 번쯤 의심해 보는 것이 좋다.


이탈리아인의 올리브유 사랑

한국에서 참기름이 집집마다 맛이 다르듯 이탈리아에서는 올리브유가 그렇다.

어떤 집은 토스카나산만 고집하고, 어떤 집은 몇 대째 거래하는 농가 제품만 사용한다.

우리 집도 매년 아는 농가에서 만든 올리브유를 구입한다.

새로 짜낸 올리브유를 처음 맛보면 풀 향과 쌉싸름함, 그리고 목 뒤를 간질이는 매운맛이 느껴진다.

처음에는 낯설지만 어느 순간 그 맛을 기다리게 된다.

어쩌면 좋은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의 가장 중요한 재료는 올리브가 아니라 시간과 햇살, 그리고 그것을 키운 사람의 정성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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