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요리

팔레르모의 소박한 병아리콩 튀김, 빠넬레(Panelle)

corita40019 2026. 7. 28. 18:38

빠넬레를 한국에서 만들어 보고 싶다면 먼저 병아리콩가루를 준비해야 한다. 병아리콩 통조림이나 삶은 병아리콩을 으깨는 방식으로는 빠넬레 특유의 매끈하고 단단한 반죽을 재현하기 어렵다. 한국에서는 온라인 쇼핑몰이나 수입 식재료점에서 ‘병아리콩가루’, ‘칙피 플라워’, ‘베산가루’라는 이름으로 찾을 수 있다.

 

다만 인도 요리에 사용하는 베산가루는 제품에 따라 병아리콩의 종류와 분쇄 상태가 달라 맛과 질감에 차이가 날 수 있다. 가능하면 원재료가 병아리콩 100%인 고운 가루를 고르는 것이 좋다. 또한 반죽을 끓일 때는 뭉치거나 냄비 바닥에 눌어붙기 쉬우므로, 찬물에 가루를 먼저 잘 풀고 불에 올린 뒤 계속 저어야 한다. 충분히 되직해지기 전에 불을 끄면 굳지 않아 튀길 때 모양이 무너질 수 있다.

 

빠넬레(Panelle)는 병아리콩가루에 물과 소금, 파슬리를 넣어 되직하게 끓인 다음 얇게 펴서 굳히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튀기는 시칠리아 음식이다. 재료만 보면 무척 단순하지만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우며, 병아리콩 특유의 고소한 맛이 은은하게 살아 있다.

 

빠넬레의 고향은 시칠리아의 주도 팔레르모다. 오늘날에도 발라로(Ballarò), 부치리아(Vucciria), 카포(Capo) 같은 팔레르모의 오래된 시장과 길거리 음식점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빠넬레는 아란치나, 스핀초네, 빠네 꼰 라 밀짜와 함께 팔레르모를 대표하는 길거리 음식으로 꼽힌다. 이탈리아 관광청

 

그 기원은 시칠리아가 아랍의 지배를 받았던 9~1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전해진다. 아랍 문화권에서 널리 사용되던 병아리콩을 가루로 만들어 물과 함께 익혀 먹던 방식이 시칠리아에 전해졌고, 이후 얇게 굳혀 기름에 튀기는 오늘날의 빠넬레로 발전했다는 설명이다. 정확한 탄생 시점을 기록으로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병아리콩과 튀김 문화 속에는 여러 문명이 오갔던 시칠리아의 역사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팔레르모에서는 갓 튀긴 빠넬레를 단독으로 먹기도 하지만, 보통 참깨가 붙은 부드러운 빵 사이에 여러 장 넣어 **빠네 에 빠넬레(Pane e panelle)**로 즐긴다. 여기에 감자 크로켓인 크로케 또는 팔레르모 방언으로 ‘까질리(cazzilli)’를 함께 넣기도 한다. 마지막에 레몬즙을 넉넉히 뿌리면 기름진 맛이 줄어들고 병아리콩의 고소함이 한층 선명해진다. 빠네 에 빠넬레는 현지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팔레르모식 간식 가운데 하나로 소개된다. Italia.it

 

한국에서는 참깨가 붙은 시칠리아식 빵을 구하기 어려우므로 부드러운 햄버거 번이나 작은 모닝빵, 치아바타로 대신할 수 있다. 빠넬레에 레몬즙을 뿌리고 양상추나 루콜라를 조금 더하면 가벼운 채식 샌드위치가 된다. 매콤한 맛을 좋아한다면 소스에 청양고추를 넣기보다 반죽에 후추나 페페론치노를 소량 더하는 편이 본래의 고소한 맛을 살리기 좋다.

 

튀긴 뒤 오래 두면 빠르게 눅눅해지므로 빠넬레는 한꺼번에 많이 튀기지 말고 먹을 만큼만 조리하는 것이 좋다. 반죽에는 이미 물이 많이 들어가 있으므로 표면이 충분히 굳고 물기가 마른 뒤 튀겨야 기름이 심하게 튀지 않는다.

 

밀가루와 달걀, 고기 없이도 만들 수 있는 빠넬레는 오래전 서민들의 허기를 달래주던 소박한 음식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단순함 덕분에 오늘날에는 채식으로도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길거리 음식이 되었다. 병아리콩가루와 물만으로 이렇게 고소하고 든든한 음식이 완성된다는 사실이 빠넬레의 가장 큰 매력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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