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요리

빨간 스핀초네와 하얀 스핀초네, 팔레르미타노와 바게레제의 차이

corita40019 2026. 7. 28. 19:46

시칠리아의 길거리 음식을 이야기하면서 스핀초네(Sfincione)를 빼놓을 수 없다. 겉모습만 보면 두꺼운 사각 피자처럼 보이지만, 나폴리 피자처럼 얇고 쫄깃한 음식은 아니다. 이름처럼 반죽이 높고 폭신하며, 부드러운 빵 위에 소스와 치즈, 안초비, 빵가루 등을 올려 굽는 팔레르모 지역의 전통 음식이다.

스핀초네라는 이름은 ‘스펀지’를 뜻하는 라틴어 스폰자(Spongia)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널리 알려져 있다. 충분히 발효된 반죽이 두껍고 부드러우며 공기층을 품은 모습이 스펀지와 닮았기 때문이다. 한편 꿀을 곁들인 튀긴 반죽을 뜻하는 아랍어 계통의 단어에서 유래했다는 설명도 있어, 정확한 어원은 하나로 단정하기 어렵다.

시칠리아는 오랫동안 여러 문명이 오갔던 섬이다. 스핀초네의 이름과 반죽에도 그 복잡한 역사의 흔적이 겹쳐 있는 셈이다.

팔레르모 시장의 붉은 스핀초네

스핀초네 팔레르미타노(Sfincione palermitano)는 팔레르모의 시장과 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이다.

높고 폭신하게 발효시킨 반죽 위에 안초비와 까초까발로를 올리고, 천천히 익힌 양파와 토마토소스를 넉넉하게 덮는다. 마지막으로 오레가노와 올리브오일, 고운 빵가루를 뿌려 구워낸다.

토마토와 양파가 어우러진 촉촉한 소스, 안초비의 짭짤한 감칠맛, 까초까발로의 깊은 풍미가 빵처럼 부드러운 반죽에 스며든다. 표면의 빵가루는 소스의 수분을 흡수하면서도 살짝 구워져 고소한 맛을 더한다.

우리가 사진이나 팔레르모 길거리 음식 영상에서 자주 보는 붉은색 스핀초네가 바로 이 팔레르미타노다. 일반적인 피자처럼 둥글게 만들기보다 커다란 사각 팬에 두껍게 구운 뒤 네모나게 잘라 판매한다.

팔레르모의 발라로, 부치리아, 카포 같은 전통시장에서는 빠넬레와 크로케, 아란치나, 빠니 카 메우사와 함께 스핀초네도 손에 들고 먹는 대표 음식으로 소개된다. 시칠리아 공식 관광청

바게리아의 하얀 스핀초네

팔레르모에서 동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바게리아(Bagheria)가 있다. 화려한 귀족 저택과 주세뻬 토르나토레 감독의 고향으로도 알려진 도시지만, 음식에 관심이 있다면 하얀 스핀초네를 먼저 떠올릴 수 있다.

스핀초네 바게레제(Sfincione bagherese)의 가장 큰 특징은 토마토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스핀초네 비앙코’, 즉 하얀 스핀초네라고도 부른다.

바게레제는 팔레르미타노보다 반죽을 조금 더 높고 폭신하게 만든다. 반죽 위에 올리브오일에 녹인 안초비를 얇게 바르고 양파와 프리모살레를 올린다. 여기에 숙성 까초까발로와 빵가루, 오레가노를 더하며, 프리모살레와 함께 양젖 리코타를 넣는 더욱 부드러운 버전도 있다.

토마토소스가 없기 때문에 치즈와 양파, 안초비의 맛이 훨씬 직접적으로 느껴진다. 팔레르미타노가 토마토와 양파의 달고 진한 맛을 중심으로 한다면, 바게레제는 치즈의 고소함과 안초비의 감칠맛, 올리브오일의 풍미가 중심이 된다.

전통적으로 크리스마스 시기에 만들어 먹던 음식이지만, 오늘날에는 계절과 관계없이 바게리아의 빵집과 포카체리아에서 만날 수 있다. 바게리아 스핀초네 공식 소개

“스핀초네는 하나뿐이며, 그것은 바게리아의 것이다”

바게리아 사람들은 종종 “스핀초네는 하나뿐이며 그것은 바게리아의 스핀초네다”라고 말한다. 가까운 팔레르모와 카스텔다챠에도 각자의 스핀초네가 있지만, 바게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하얀 스핀초네야말로 원형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물론 팔레르모 사람들에게 스핀초네라고 하면 시장에서 사 먹는 붉은 팔레르미타노가 먼저 떠오른다. 어느 쪽이 진짜인지를 가리기보다는 같은 폭신한 반죽이 지역의 식재료와 취향에 따라 서로 다른 음식으로 발전했다고 보는 편이 더 흥미롭다.

두 도시는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한쪽은 토마토를 듬뿍 사용하고, 다른 한쪽은 토마토를 완전히 제외했다. 붉은색과 흰색이라는 선명한 차이 덕분에 두 스핀초네를 한자리에 놓으면 서로 다른 음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피자와 스핀초네는 무엇이 다를까?

스핀초네는 피자와 비슷하지만 반죽의 성격과 토핑을 올리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반죽은 일반적인 피자보다 수분이 많고 부드러우며, 팬 안에서 충분히 발효시켜 높이 부풀린다. 잘 구워진 스핀초네의 내부에는 크고 작은 공기층이 형성되고, 손으로 눌렀다가 놓으면 다시 돌아올 만큼 폭신하다.

토핑 위에 빵가루를 뿌리는 것도 특징이다. 빵가루가 소스와 올리브오일을 흡수해 표면에 고소한 층을 만들기 때문에 일반적인 치즈 피자와는 다른 식감이 난다.

스핀초네는 막 구워 따뜻할 때도 맛있지만, 조금 식은 뒤에도 반죽이 부드럽고 맛이 잘 유지된다. 커다란 팬에 구워 네모나게 자르면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기 좋아 크리스마스와 가족 모임에도 잘 어울린다.

한국에서 만들어 먹는 방법과 주의점

한국에서는 시칠리아의 리마치나타 세몰라와 00번 밀가루를 모두 구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때는 강력분과 중력분을 섞어 폭신한 반죽을 만들 수 있다. 다만 일반 피자 반죽처럼 단단하게 치대기보다, 수분이 많고 손에 달라붙는 부드러운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까초까발로는 숙성 프로볼로네로 대체할 수 있다. 바게레제에 사용하는 프리모살레를 구하기 어렵다면 수분이 적은 생모차렐라나 담백한 반경성 치즈를 사용할 수 있다. 리코타를 넣을 때는 물기를 충분히 제거해야 반죽이 축축해지지 않는다.

안초비는 오일에 담긴 필레를 이용할 수 있지만 이미 짠맛이 강하므로 소금을 먼저 많이 넣지 않는 것이 좋다. 팔레르미타노의 토마토와 양파소스도 충분히 졸여 수분을 줄인 뒤 반죽 위에 올려야 한다.

한국식 빵가루는 입자가 굵고 바삭한 제품이 많다. 정통 스핀초네에 가까운 질감을 내려면 고운 빵가루를 사용하거나 식빵을 잘게 갈아 올리는 편이 좋다.

한 번의 반죽으로 두 가지를 모두 만들고 싶다면 반죽을 두 개의 작은 팬에 나누면 된다. 한쪽에는 토마토와 양파소스를 올려 붉은 팔레르미타노를 만들고, 다른 한쪽에는 프리모살레와 리코타를 올려 하얀 바게레제를 만든다.

같은 반죽에서 출발했지만 전혀 다른 색과 맛으로 완성되는 두 스핀초네를 함께 만들면 팔레르모와 바게리아의 작은 음식 경쟁을 집에서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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