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요리

빠넬레부터 빠니 카 메우사까지, 팔레르모의 길거리 샌드위치 문화

corita40019 2026. 7. 28. 19:07

빠니니 팔레르미타니(Panini palermitani)는 특정한 한 가지 음식의 이름이라기보다 팔레르모에서 즐겨 먹는 여러 종류의 샌드위치를 아우르는 표현이다.

팔레르모의 오래된 시장을 걷다 보면 빵은 단순한 곁들임 음식이 아니라 길거리 음식을 담는 그릇이 된다. 갓 튀긴 빠넬레를 넣기도 하고 감자 크로켓을 함께 끼우기도 하며, 삶은 소의 내장을 라드에 볶아 빵 속을 채우기도 한다.

발라로(Ballarò), 부치리아(Vucciria), 카포(Capo), 보르고 베키오(Borgo Vecchio) 같은 전통시장에서는 이런 음식을 접시에 담아 앉아서 먹기보다 종이에 싸서 손에 들고 먹는다. 상인의 외침과 튀김 냄새, 사람들의 대화까지 모두 음식의 일부가 되는 셈이다. 빵 하나에 팔레르모 서민들의 역사와 생활 방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칠리아 공식 관광청

빠네 에 빠넬레(Pane e panelle)

가장 부담 없이 맛볼 수 있는 팔레르모식 샌드위치는 빠네 에 빠넬레다.

빠넬레는 병아리콩가루와 물, 소금, 파슬리로 만든 반죽을 얇게 굳혀 튀긴 음식이다. 앞서 빠넬레 편에서 만드는 법을 자세히 소개했지만, 팔레르모에서는 빠넬레만 단독으로 먹기보다 참깨가 붙은 부드러운 빵 사이에 여러 장 끼워 먹는 경우가 많다.

빠넬레에 소금과 후추를 뿌리고 레몬즙을 더하면 재료는 단순하지만 고소하고 산뜻한 샌드위치가 완성된다. 갓 튀긴 빠넬레의 바삭한 가장자리와 부드러운 빵이 대비되며, 레몬이 튀김의 기름진 맛을 정리해 준다.

조금 더 든든하게 먹고 싶을 때는 감자와 파슬리로 만든 크로케(Crocchè)를 함께 넣는다. 팔레르모 방언으로는 모양을 빗대어 까질리(Cazzilli)라고도 부른다. 빠넬레와 크로케가 함께 들어가면 병아리콩의 고소함과 감자의 포근한 식감이 어우러진다.

빠네 에 빠넬레는 고기나 치즈가 들어가지 않아 오늘날에는 팔레르모를 대표하는 채식 길거리 음식으로도 주목받는다. 시칠리아 공식 관광 사이트에서도 빠넬레와 크로케를 팔레르모 길거리 음식의 상징적인 조합으로 소개한다. Visit Sicily

빠니 카 메우사(Pani câ meusa)

빠네 에 빠넬레가 병아리콩과 감자로 만든 소박한 샌드위치라면, 빠니 카 메우사는 팔레르모 길거리 음식의 훨씬 강렬한 얼굴을 보여준다.

빠니 카 메우사는 시칠리아 방언이며, 표준 이탈리아어로는 빠네 꼰 라 밀짜(Pane con la milza), 즉 ‘비장을 넣은 빵’이라는 뜻이다. 소나 송아지의 비장과 폐, 때로는 기관을 먼저 삶거나 쪄서 익힌 다음 얇게 썰어 라드에 볶고, 참깨가 붙은 부드러운 빵에 가득 넣는다.

그 기원은 중세 팔레르모의 유대인 도축업자들과 관련되어 있다고 전해진다. 도축의 대가로 돈 대신 비장, 폐, 기관 같은 내장을 받아 조리해 먹기 시작했고, 이것이 훗날 팔레르모를 대표하는 길거리 음식으로 발전했다는 이야기다. 정확한 탄생 과정을 모두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라기보다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기원 설화로 이해하는 편이 좋다. 이탈리아 관광청

빠니 카 메우사를 주문할 때는 두 가지 방식 가운데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스키에또(Schietto)**는 ‘미혼’ 또는 ‘홀몸’이라는 의미로, 내장을 넣은 빵에 소금과 레몬즙만 더하는 단순한 방식이다. 별도의 치즈가 들어가지 않아 내장과 라드의 진한 풍미가 그대로 드러난다.

**마리따또(Maritato)**는 ‘결혼한’이라는 뜻이다. 내장 위에 신선한 리코타나 잘게 썬 숙성 까초까발로를 더하며, 경우에 따라 두 치즈를 모두 넣기도 한다. 혼자 있던 내장 샌드위치가 치즈를 만나 ‘결혼했다’는 팔레르모 사람들의 익살스러운 작명이다.

팔레르모에서는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전날인 12월 7일에 빠니 카 메우사를 사 먹는 전통도 있다. 1834년에 문을 연 안티카 포카체리아 산 프란체스코를 비롯한 오래된 포카체리아와 길거리 노점에서 지금도 이 음식을 만날 수 있다.

한 도시에서 태어난 두 가지 샌드위치

빠네 에 빠넬레와 빠니 카 메우사는 재료와 맛이 완전히 다르다.

한쪽은 병아리콩과 감자로 만든 담백한 채식 샌드위치이고, 다른 한쪽은 비장과 폐를 라드에 볶아 넣은 진하고 기름진 내장 샌드위치다. 하지만 두 음식에는 값비싼 부위를 사용하지 않고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버리지 않으며, 빵에 넣어 간편하고 든든하게 먹었던 팔레르모 서민들의 지혜가 공통으로 담겨 있다.

어쩌면 이처럼 극단적으로 다른 두 샌드위치가 한 도시의 대표 음식이 되었다는 점이 팔레르모 길거리 음식의 매력인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만들어 먹는 방법

한국에서는 참깨가 붙은 팔레르모식 빵을 구하기 어려우므로 부드러운 햄버거 번, 모닝빵이나 작은 치아바타를 사용하면 된다.

빠네 에 빠넬레는 앞서 소개한 빠넬레 레시피로 만든 뒤 레몬즙과 후추를 더하면 비교적 쉽게 재현할 수 있다. 감자 크로켓을 함께 넣으면 빠네 빠넬레 에 크로케의 맛에 더욱 가까워진다.

빠니 카 메우사의 비장과 폐는 한국에서 일반 소비자가 구하기 쉽지 않다. 전문 정육점에서 식용으로 손질된 내장을 구할 수 있을 때만 정통 방식에 도전하고, 위생을 위해 속까지 충분히 익혀야 한다. 비장 대신 소고기나 간을 사용하면 비슷한 모양의 샌드위치는 만들 수 있지만, 맛과 식감이 달라 정통 빠니 카 메우사가 아니라 ‘팔레르모식 샌드위치에서 영감을 받은 응용 요리’라고 구분하는 것이 정확하다.

빠넬레와 내장이라는 전혀 다른 재료를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결국 빵이다. 팔레르모에서 빵은 음식을 곁들이는 조연이 아니라, 시장의 맛과 도시의 역사를 손에 들고 먹을 수 있게 해주는 가장 실용적인 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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