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 와서 처음 맞은 산 실베스트로 저녁 만찬에서 **크레스뻴레(crespelle)**라는 음식을 처음 먹었다. 라자냐처럼 넓고 얇은 반죽 사이에 버섯과 채소, 베샤멜라와 치즈가 층층이 들어간 부드러운 오븐요리였다.
당시에는 넓은 파스타를 사용한 요리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크레스뻴레는 달걀과 우유, 밀가루로 얇게 부친 이탈리아식 크레프였다. 내가 사는 에밀리아로마냐에서는 버섯이나 리꼬따, 시금치 등을 채우고 베샤멜라와 치즈를 얹어 오븐에서 구운 크레스뻴레를 프리모로 즐긴다. 내가 먹었던 음식은 아마도 버섯을 넣은 크레스뻴레 아이 풍기(crespelle ai funghi) 또는 크레스뻴레를 라자냐처럼 쌓은 요리였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 **크리스뻴레 카타네지(Crispelle catanesi)**라는 이름을 보았을 때도 비슷한 음식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크레스뻴레와 크리스뻴레는 철자가 한 글자 정도밖에 차이 나지 않지만, 반죽부터 조리법까지 전혀 다른 음식이다.
크리스뻴레 카타네지는 세몰라를 넣은 묽고 부드러운 발효 반죽에 양젖 리꼬따나 안초비를 넣어 뜨거운 기름에 튀긴 카타니아의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이다. 크레프를 오븐에 구워 먹는 에밀리아로마냐의 크레스뻴레와 달리, 카타니아의 크리스뻴레는 손으로 집어 뜨거울 때 먹는 소박하고 든든한 튀김이다.
두 가지 전통적인 크리스뻴레
카타니아에서는 주로 두 가지 형태를 볼 수 있다.
- 크리스뻴레 콘 라 리꼬따
부드러운 양젖 리꼬따를 넣어 둥글게 튀긴다. 노릇한 반죽을 베어 물면 따뜻하고 고소한 리꼬따가 부드럽게 흘러나온다. - 크리스뻴레 콘 레 아추게
안초비를 넣고 길쭉하게 빚어 튀긴다. 폭신한 반죽과 안초비의 짭조름하고 진한 감칠맛이 대조를 이룬다.
리꼬따를 넣은 것은 둥글게, 안초비를 넣은 것은 길쭉하게 만드는 형태가 전통적으로 알려져 있어 겉모습만으로도 어느 정도 속을 짐작할 수 있다. 카타니아 크리스뻴레의 전통적인 형태와 속재료
카타니아에서는 크리스뻴레를 전문으로 만드는 **크리스뻴레리아(crispelleria)**도 볼 수 있다. 커다란 솥에 기름을 가득 붓고 숙련된 사람이 부드러운 반죽을 빠르게 다루어 튀기는 모습 자체가 카타니아 길거리 음식 문화의 한 장면이다.
전통적으로 축일이나 가족이 모이는 날 즐겼으며 특히 산 마르티노, 성탄절을 앞둔 기간과 산타가타 축제 같은 때 자주 등장한다. 오늘날에는 계절과 관계없이 크리스뻴레리아와 길거리 음식점에서 만날 수 있다. 크리스뻴레는 단순한 튀김이 아니라 카타니아의 축제와 서민적인 식문화를 함께 보여주는 음식이다.
달콤한 크리스뻴레와는 다르다
카타니아에는 쌀과 우유를 이용해 길쭉하게 튀긴 뒤 꿀을 뿌리는 **크리스뻴레 디 리조(crispelle di riso)**도 있다. 주로 산 주셉뻬 축일에 먹는 달콤한 음식으로, 앞서 소개한 스핀치 디 리조와 같은 계열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크리스뻴레 카타네지는 리꼬따나 안초비를 넣은 짭짤한 길거리 음식이므로 두 종류를 구분하는 것이 좋다.
한국에서 만들어 본다면
한국에서는 정통 반죽에 사용하는 고운 듀럼밀 세몰라를 구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때는 강력분만 사용하거나 강력분과 고운 세몰라를 약 2:1로 섞으면 된다. 반죽은 빵 반죽처럼 단단하게 치대는 것이 아니라 손에 달라붙을 정도로 부드럽고 촉촉하게 만들어야 튀겼을 때 속이 폭신해진다.
양젖 리꼬따는 일반 우유로 만든 리꼬따로 대체해도 좋다. 리꼬따가 지나치게 촉촉하면 튀기는 동안 반죽 밖으로 새어 나올 수 있으므로 체에 밭쳐 물기를 충분히 빼야 한다. 리꼬따를 구하기 어렵다면 물기를 뺀 코티지치즈나 부드러운 생치즈를 사용할 수 있지만, 피자용 모짜렐라는 늘어나는 식감이 강해 전통적인 리꼬따 버전과는 조금 다른 음식이 된다.
안초비는 한국에서도 병이나 캔에 든 오일 안초비 필레를 쉽게 구할 수 있다. 필레의 기름을 닦고 너무 크거나 짜다면 반으로 나누어 넣는다. 국물용 마른 멸치는 안초비와 향과 질감이 상당히 다르므로 그대로 대체하기보다는 오일 안초비를 사용하는 편이 좋다.
한국적인 맛으로 응용한다면 다음과 같은 조합도 가능하다.
- 리꼬따+다진 쪽파
- 리꼬따+볶은 시금치
- 리꼬따+잘게 썬 김치
- 소량의 명란+크림치즈
- 안초비+청양고추 한 조각
김치, 시금치, 명란처럼 수분이 있거나 간이 강한 재료는 물기를 충분히 제거하고 소량만 넣어야 한다. 속을 많이 채우면 튀기는 동안 반죽이 벌어질 수 있다.
전통적인 맛을 살리고 싶다면 스트루또, 즉 돼지기름에 튀길 수 있다. 가정에서는 튀김용 기름을 사용해도 되며, 한꺼번에 너무 많이 넣으면 기름 온도가 떨어져 반죽이 기름을 많이 흡수하므로 몇 개씩 나누어 튀기는 것이 좋다.
에밀리아로마냐에서 처음 만났던 부드럽고 크리미한 버섯 크레스뻴레와 카타니아의 뜨겁고 짭조름한 크리스뻴레. 이름이 비슷해 시작된 호기심 덕분에 같은 이탈리아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얼마나 다양한 음식이 존재하는지 다시 확인하게 된다.

시칠리아 지방소개, 식재료와 음식리스트를 보시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이탈리아 요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같은 포카차, 전혀 다른 얼굴|포카차 메씨네제(Focaccia messinese) (0) | 2026.07.29 |
|---|---|
| 얇은 반죽 사이로 라구자의 맛을 접어 넣은 스까차 라구자나(Scaccia ragusana) (0) | 2026.07.29 |
| 달콤하게 익힌 양파를 품은 카타니아의 페이스트리, 치뽈리나 카타네제(Cipollina catanese) (0) | 2026.07.29 |
| 카타니아의 든든한 오븐 간식, 까르또차따 카타네제(Cartocciata catanese) (0) | 2026.07.29 |
| 팔레르모의 뜨거운 내장 요리, 꾸아루메(Quarume) (0) | 2026.07.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