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요리

습지의 풀로 감싸 보존한 숭어요리, 메르까 디 무찌네

corita40019 2026. 7. 23. 03:23

사르데냐 서부의 오리스따노(Oristano)와 시니스(Sinis)반도에는 바다와 육지 사이에 형성된 넓은 석호가 있다. 그중에서도 까브라스(Cabras) 석호는 숭어와 숭어알로 만든 보따르가 디 무찌네(Bottarga di muggine)로 유명하다.

같은 숭어를 사용하지만 보따르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드는 음식도 있다. 바로 메르까 디 무찌네(Merca di muggine), 사르데냐어로 사 메르까(Sa merca)라고 부르는 음식이다.

보따르가가 숭어알을 소금에 절여 말린 것이라면 메르까 디 무찌네는 숭어를 통째로 소금물에 삶은 뒤, 석호 주변에서 자라는 향기로운 습지 식물로 감싸 보관하는 음식이다.

화려한 소스나 향신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숭어와 소금, 습지의 풀이라는 단순한 재료만으로 생선을 보존하고 특유의 향을 더한다. 사르데냐 어부들의 생활과 석호의 자연환경이 그대로 담긴 음식이다.

‘메르까’는 무슨 뜻일까

메르까(Merca)는 일반적으로 ‘소금에 절인 음식’ 또는 ‘소금으로 보존한 음식’이라는 의미로 설명된다. 페니키아어의 ‘메르크(Merk)’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사르데냐, 특히 시니스반도는 고대 페니키아인들이 활동했던 지역이다. 시니스반도 끝에는 페니키아와 카르타고, 로마 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고대 도시 타로스(Tharros)가 있다.

바다를 오랫동안 항해해야 했던 페니키아인들은 생선을 소금으로 보존하는 기술을 사용했다. 메르까 역시 이러한 고대 지중해의 보존 문화와 연결된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정확한 기원을 한 시기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소금물에 익힌 생선을 식물로 감싸 수분을 유지하고 운반하기 쉽게 만든 방식에는 냉장고가 없던 시대의 지혜가 담겨 있다.

사 지바로 만드는 천연 포장

메르까 디 무찌네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사 지바(Sa Ziba)라는 습지 식물이다.

사 지바는 까브라스 석호 주변에서 자라는 염생식물로, 학명은 Atriplex portulacoides다. 영어로는 시 퍼슬레인(Sea purslane)이라고 부른다. 샐리코니아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지만 서로 다른 식물이다.

손질한 숭어는 진한 소금물에서 약 30분 동안 삶는다. 삶은 생선은 사 지바 위에 펼쳐 놓고 그늘에서 식히면서 겉의 수분을 어느 정도 말린다.

생선이 완전히 마르기 전에 여러 마리를 한데 모아 사 지바로 감싼다. 이렇게 만든 풀 꾸러미는 생선을 외부의 벌레로부터 보호하고 적당한 습도를 유지한다. 동시에 풀의 향이 숭어에 스며들어 메르까만의 독특한 풍미를 만든다.

플라스틱이나 종이가 없던 시대에 주변에서 자라는 식물을 포장재와 향신료, 보존 도구로 함께 사용한 것이다.

사르데냐 농업청의 전통식품 자료에서도 메르까를 소금물에 삶은 숭어를 사 지바로 만든 작은 꾸러미에 넣어 보존하는 음식으로 설명한다. 주산지는 까브라스, 리올라 사르도, 누라끼, 바라띨리 산 삐에뜨로를 포함한 시니스반도다. 사르데냐 농업청의 메르까 디 무찌네 자료

어부들의 휴대식과 보존 음식

메르까는 단순히 숭어를 삶은 음식이 아니다. 어부들이 잡은 생선을 조금 더 오래 보관하고 이동하면서 먹기 위해 고안한 생활 음식이었다.

과거 까브라스의 어부들은 석호에서 잡은 숭어를 소금물에 삶아 사 지바로 감쌌다. 이렇게 포장하면 생선이 지나치게 건조해지는 것을 막고 운반하기도 쉬웠다. 들이나 배에서 일할 때 가지고 다니는 음식으로도 알맞았다.

오늘날에는 일반적인 생선요리처럼 널리 생산되지 않는다. 전통적인 제조법과 사 지바를 다루는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로 까브라스와 주변 지역의 전통 식당이나 아그리뚜리스모, 지역 축제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까브라스에서 매년 8월 말 열리는 산 살바토레(San Salvatore) 축제와 연결되어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어떤 맛일까

메르까 디 무찌네는 소금물에 삶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짭짤하다. 숭어 살은 부드럽고 촉촉하며, 사 지바에서 옮겨온 풀과 바다의 향이 은은하게 느껴진다.

겉모습은 단순한 삶은 생선처럼 보이지만 일반적인 소금구이나 생선찜과는 다른 향을 지닌다. 바다와 석호의 염생식물이 한 음식 안에서 만난다.

전통적으로는 풀 꾸러미를 열어 숭어를 적당한 크기로 나눈 뒤 차갑거나 실온에 가까운 상태로 먹는다. 별도의 진한 소스를 더하기보다는 올리브오일이나 레몬을 조금 곁들여 숭어 본래의 맛을 살리는 편이 좋다.

안티파스토로 소량 내거나, 양을 넉넉하게 준비해 가벼운 세콘도로 먹을 수도 있다. 빠네 카라자우(Pane carasau)와 채소, 올리브를 곁들이면 사르데냐다운 한 접시가 된다. 와인은 베르멘티노(Vermentino)나 베르나차 디 오리스따노(Vernaccia di Oristano)가 잘 어울린다.

메르까 디 무찌네는 숭어 한 마리와 소금, 석호의 풀을 이용해 만든 소박한 음식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어부들의 보존 기술과 이동 생활, 까브라스 석호의 자연, 고대 지중해 문화의 기억이 함께 담겨 있다.

보따르가가 숭어알을 귀한 식재료로 바꾼 음식이라면, 메르까는 숭어 한 마리를 석호의 향과 함께 보존한 음식이다. 같은 생선에서 태어났지만 서로 다른 사르데냐의 지혜를 보여준다.

 

 

 

 

 

 

 

 

 

 

 

 

 

사르데냐의 지방소개, 식재료와 음식 리스트를 보시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https://corita40019.tistory.com/299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