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요리

빠네 디 렌티니(Pane di Lentini), S자 모양에 마을의 기억을 담은 시칠리아 전통 빵

corita40019 2026. 7. 29. 23:02

시칠리아 전통 빵 두 번째는 시라쿠자 지방의 **빠네 디 렌티니(Pane di Lentini)**이다.
처음 이 빵을 보면 맛보다 모양에 먼저 눈길이 간다. 일반적인 둥근 빵과 달리 반죽의 양쪽 끝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말려 있어 알파벳 S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표면에는 참깨가 넉넉히 뿌려져 있고, 구불구불한 모양 때문에 한 덩어리의 빵이라기보다 오래된 문양이나 장식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독특한 형태에는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렌티니와 까를렌티니에서 만들어온 빵

빠네 디 렌티니는 시칠리아 동부 시라쿠자 지방의 렌티니와 인접한 까를렌티니(Carlentini)에서 전해지는 전통 빵이다.
과거에는 마을의 여성들이 집에서 반죽한 다음 공동으로 사용하는 석조 가마로 가져가 구웠다. 집집마다 오븐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정해진 날에 모여 일주일 동안 먹을 빵을 한꺼번에 만들었다.
가마 사용료를 돈으로 내는 대신 구운 빵의 일부를 가마 주인에게 건네기도 했다. 이렇게 집에서 반죽하고 마을의 가마에서 함께 굽는 과정은 단순한 요리가 아니라 여성들이 레시피와 기술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공동체의 중요한 시간이기도 했다. 슬로푸드 렌티니 전통 빵
빵은 밭이나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며칠씩 일하는 노동자들의 식량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쉽게 굳거나 상하지 않고 며칠 동안 먹을 수 있어야 했다. 천연 발효종과 듀럼밀을 사용해 촘촘하고 촉촉하게 만든 이유도 이러한 생활 방식과 관련이 있다.

S자 모양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빠네 디 렌티니의 대표적인 모양은 알파벳 S자이다. 그러나 이 S가 ‘시칠리아(Sicilia)’나 특정 성인의 이름을 상징한다는 확실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는다.
따라서 현대적인 의미를 억지로 붙이기보다는, 반죽을 길게 늘여 양쪽 끝을 반대 방향으로 말아 만든 렌티니 지역의 전통적인 손 성형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이 빵에는 S자 이외에도 여러 형태가 있다.

  • 꾸뚜라(Cuddura): 고리나 큰 도넛 모양
  • 야두쭈(Jadduzzu): 작은 수탉 모양
  • 바스떼다(Vastedda): 둥근 빵
  • 종교 행사와 명절에 만드는 여러 장식 빵

렌티니의 빵 문화에서는 모양에 특별한 의미를 담는 경우가 많았다. 산 주셉뻬 축일에는 성인의 지팡이를 본뜬 빵을 만들었고, 크리스마스에는 아기 예수, 곡식 바구니와 신의 섭리를 상징하는 장식 빵을 만들었다.
그러나 매일 먹던 S자 빠네 디 렌티니의 정확한 상징은 문헌에 명확하게 남아 있지 않다. 오늘날에는 무엇보다 이 지역 빵을 알아보게 하는 시각적 표식이자, 기계가 아닌 손으로 하나씩 성형했던 제빵 방식의 흔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양쪽을 말아 만든 형태는 빵의 표면적을 넓혀 서로 다른 두께의 부분을 만든다. 그래서 끝부분에서는 조금 더 잘 구워진 고소한 맛이 나고, 중앙의 두꺼운 부분에서는 부드럽고 촉촉한 속살을 맛볼 수 있다. 다만 이것은 모양이 만드는 조리상의 효과이며, S자의 역사적인 기원을 설명하는 기록은 아니다.

듀럼밀과 크리셴티

빠네 디 렌티니의 기본 재료는 매우 단순하다.
듀럼밀 세몰라, 물, 소금, 천연 발효종과 참깨를 사용한다. 천연 발효종은 현지에서 **크리셴티(criscenti 또는 crescente)**라고 부른다. 매일 듀럼밀가루와 물을 더해 관리하며, 최종 반죽에는 보통 전체 가루 무게의 약 10%가 들어간다.
과거에는 투미니아나 다른 시칠리아 고대 밀을 일정 부분 섞기도 했지만, 오늘날에는 주로 듀럼밀 세몰라 리마치나타를 사용한다.
반죽을 S자나 고리, 수탉 모양으로 성형한 뒤 표면에 참깨를 뿌리고 면포를 덮어 두 시간가량 발효한다. 빵은 약 500g 크기로 만들며 석조 가마에서 45분 정도 굽는다.
전통 가마의 연료도 흥미롭다. 올리브나무와 오렌지나무 가지뿐 아니라 아몬드 껍질을 함께 태웠다. 이것이 빵에 나무, 구운 견과류와 향신료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향을 더한다. 렌티니 전통 제빵 방식

빠네 네로와는 어떻게 다를까?

앞서 소개한 빠네 네로 디 까스텔베트라노와 빠네 디 렌티니는 모두 듀럼밀과 천연 발효종, 참깨와 장작가마를 사용한다. 그러나 완성된 빵의 인상은 다르다.


구분 빠네 디 렌티니 네로 디 까스텔베트라노
대표 형태 S자·고리·수탉 둥근 바스떼다
주요 가루 듀럼밀 세몰라 듀럼밀과 투미니아
껍질 비교적 얇고 부드러운 갈색 두껍고 짙은 커피색
속살 담황색, 촘촘하고 탄력 있음 황금빛 갈색, 촉촉하고 묵직함
주요 특징 손으로 만든 독특한 형태 투미니아가 만드는 짙은 색과 향

빠네 디 렌티니의 속살은 담황색이며 기공이 작고 촘촘하다. 그러나 단단하거나 퍽퍽한 빵은 아니다. 속은 부드럽고 탄력이 있으며, 듀럼밀의 은은한 단맛과 참깨의 고소함이 느껴진다.

사라질 위기에 놓인 전통

빠네 디 렌티니는 손으로 성형하고 천연 발효종을 관리해야 하며, 전통 가마에서 오랫동안 구워야 한다. 대량생산에 적합하지 않아 만드는 제빵사가 점차 줄어들었다.
한동안 슬로푸드 프레시디오를 통해 보호되었으나 2023년 생산 규정과 실제 제빵 환경 사이의 어려움으로 프레시디오 운영이 종료되었다. 그렇다고 빵의 전통적 가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현재도 슬로푸드의 **맛의 방주(Arca del Gusto)**에 등재되어 있으며, 지역 생산자들은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떻게 먹을까?

빠네 디 렌티니는 올리브오일과 소금만 곁들여도 맛있다. 참깨가 넉넉히 붙어 있어 구우면 고소한 향이 더욱 강해진다.
다음과 같은 음식과 잘 어울린다.

  •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과 오레가노
  • 토마토와 뻬꼬리노
  • 올리브와 안초비
  • 카포나타와 구운 가지
  • 살라미와 프로볼라
  • 생선 수프나 콩 수프

며칠 지난 빵은 얇게 잘라 브루스께따로 굽거나 판그라따또를 만들어 파스타 위에 뿌릴 수 있다.

한국에서 빠네 디 렌티니 만들기

한국에서도 세몰라 리마치나타를 구할 수 있다면 기본적인 맛과 식감을 비교적 잘 재현할 수 있다.

기본 배합

  • 세몰라 리마치나타 500g
  • 물 330~350ml
  • 활성 사워도우 발효종 50~100g
  • 소금 10g
  • 흰 참깨 넉넉히

투미니아가 있다면 세몰라의 10~20%를 투미니아 통밀가루로 바꿀 수 있다. 그러나 투미니아는 필수 재료가 아니며, 고운 듀럼밀 세몰라만으로도 오늘날 렌티니 빵과 가까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사워도우가 없다면 인스턴트 이스트 3~4g을 사용할 수 있다. 이 경우 전통적인 천연 발효 향은 줄어들지만 듀럼밀과 참깨의 맛은 충분히 살릴 수 있다.

S자 모양 만들기

반죽을 약 500g씩 나누어 짧고 굵은 막대처럼 늘인다. 가운데 부분은 두껍게 남기고 양쪽 끝을 조금 가늘게 만든다.
한쪽 끝은 시계 방향, 반대쪽 끝은 반시계 방향으로 안쪽을 향해 말면 S자 모양이 된다. 발효하면서 반죽이 퍼지고 말린 부분이 서로 붙을 수 있으므로 두 곡선 사이에 충분한 공간을 남긴다.
표면에 물을 가볍게 바르거나 젖은 천 위에 살짝 굴린 뒤 참깨를 넉넉히 묻힌다.

한국 식재료와 곁들이기

빠네 디 렌티니는 참깨 향이 강해 한국 음식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 토마토 대신 구운 가지와 된장을 아주 얇게 바른 오픈 샌드위치
  • 수육과 새우젓을 소량 올린 샌드위치
  • 불고기와 구운 파프리카
  • 들기름과 소금
  • 멸치볶음 또는 멸치 페이스트

다만 된장, 새우젓과 참기름처럼 향과 염도가 강한 재료는 소량만 사용해야 빵 자체의 듀럼밀과 참깨 향을 느낄 수 있다.

만들 때 주의할 점

굵은 세몰리나와 혼동하지 않는다

파스타를 펼칠 때 사용하는 굵은 세몰리나보다 빵 반죽용으로 곱게 간 세몰라 리마치나타가 적합하다. 굵은 세몰리나만 사용하면 반죽이 쉽게 끊어지고 거친 식감이 날 수 있다.

물을 나누어 넣는다

세몰라 리마치나타는 제품에 따라 수분 흡수량이 다르다. 처음에는 물을 320ml 정도만 넣고 반죽 상태를 보면서 나머지를 추가한다.
가루와 물을 먼저 섞어 20~30분간 쉬게 하면 듀럼밀이 물을 충분히 흡수해 반죽하기 편해진다.

밀가루 빵처럼 오래 치대지 않는다

듀럼밀 반죽은 일반 강력분 반죽과 성질이 다르다. 지나치게 오래 치대면 반죽이 끈적거리거나 구조가 오히려 약해질 수 있다.
짧게 반죽한 뒤 발효 중 두세 번 접어 힘을 보충하는 편이 좋다.

모양을 너무 촘촘하게 말지 않는다

S자의 양 끝을 너무 단단히 말면 2차 발효 때 곡선이 서로 붙어 둥근 빵이 될 수 있다. 완성 전에는 다소 과장되어 보일 정도로 곡선 사이의 간격을 넓게 남기는 것이 좋다.

큰 기공을 기대하지 않는다

빠네 디 렌티니는 속살이 촘촘하고 작은 기공을 가진 빵이다. 기공이 작다는 이유로 발효가 실패했다고 판단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큰 기공을 만들기 위해 물을 지나치게 많이 넣으면 S자 형태가 퍼지고 전통적인 탄력 있는 조직도 사라진다.

가정용 오븐에서는 껍질을 지나치게 굳히지 않는다

빠네 네로 디 까스텔베트라노와 달리 빠네 디 렌티니의 껍질은 비교적 얇고 부드러운 편이다. 무쇠냄비를 사용할 경우 초반에만 뚜껑을 덮고, 지나치게 오래 건조하게 굽지 않는다.
230~240℃에서 굽기 시작한 뒤 210~220℃로 낮춰 속까지 익히면 좋다. 장작가마 향을 흉내 내기 위해 훈연향이나 숯가루를 넣을 필요는 없다.
빠네 디 렌티니의 S자는 화려한 장식이라기보다 마을 여성들의 손에서 세대를 이어온 흔적이다. 정확한 상징이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는 점도 오히려 이 빵의 매력을 더한다.
한쪽 끝을 말고 다시 반대편을 말아 완성하는 단순한 동작 속에 공동 가마에 모여 빵을 굽던 렌티니 사람들의 생활과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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